[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축사] "아름다움을 주는 문화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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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3일 '리움' 개관식에 참석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기업 발전의 원동력으로서의 문화, 그리고 '나눌수록 커지는' 아름다움의 힘에 대해 역설했다. 다음은 이 전장관의 축사 요지.

저는 처음 이 미술관 개관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수원에 지은 화성이 떠올랐습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성이기 때문에 또는 정다산과 같은 유명한 학자들이 참여한 우리의 문예 중흥을 가져온 성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정조가 그 성을 짓기 위해서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하고 있을 때보다 못한 신하들은 이렇게 주청합니다. 성이란 튼튼하면 되는 것이고 적을 물리치는 힘만 있으면 되는 것인데 어찌하여 이토록 심려를 하십니까? 그때 정조께서 "어리석은 자들이로다, 아름다운 것이 바로 힘이니라" 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힘이라고 하면 군사력과 경제력을 손꼽고 있던 부국강병의 시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 즉 아름다움을 주는 문화의 힘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조셉 나이의 주장 그대로 문화의 힘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정치.경제의 힘을 약화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앞으로의 정치와 경제는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성장.발전하지 못한다는 시대의 변화를 의미하는 말인 것입니다.

삼성이라는 세계적인 기업은 그동안 경제의 힘으로 국보급 미술품과 세계의 명품들을 수집하고 마치 최초로 기중기를 사용하여 화성을 지은 것처럼 또한 첨단기술로 이 미술관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바로 이 미술관이 삼성이 생산하는 상품과 그 브랜드의 힘을 만들어내 주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미술관이 기업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배고픈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슬픈 미학의 상황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민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식위천의 구호가 사회를 지배하던 때에는 먹는 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유보하거나 희생해 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슬기와 용기로 배고픈 것을 극복하고 이제는 눈이 고프고 귀가 고프고 가슴이 고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입니다. 삼성기업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한국인의 배고픔과 싸워 이긴 기업입니다. 이제는 눈과 가슴이 고픈 문화의 기아를 해결하는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는 기업인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이 왜 힘인가, 문화가 왜 힘인가. 간단한 논리입니다. 물질은 나눌수록 가난해지지만 아름다움과 감동의 문화는 나눌수록 커지고 또한 번성해지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은, 그리고 문화는 어울림입니다. 기술과 자본이 경제를 낳듯이 균형과 조화에서 미가 탄생합니다. 특히 시각예술인 미술이 그렇습니다.

리움은 국보급 과거의 명품들과 현대의 최고의 한국미술을 수집해 과거와 현대를 어울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미술품들을 모아 한국과 외국을 어울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아이들이, 얼굴을 모르는 미래의 한국인들이, 세계의 인류가 이곳 리움에서 아름다움이 힘이라는 것을 배우고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리움의 문화의 보석을 국민들에게 그리고 미래의 한국인에게 선물하신 여러분들께 영광과 신의 가호가 있기를 마음 속 깊이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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