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이영덕 전 국무총리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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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별세한 이영덕(사진) 전 국무총리는 평남 강서에서 태어난 실향민이다. 교육학자 출신이지만 남북대화와 관련한 일을 많이 했다.

고인은 평양고보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59년 서울대 사범대 교수를 시작으로 교육계에 몸담았다. 교육계에선 한국교육개발원장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명지대 총장, 유네스코 서울협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남북관계 일은 84년 남북적십자사 부총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85년 8월엔 남북적십자 회담의 남측 수석대표로 평양에 갔고, 김영삼(YS) 정부 시절인 93년엔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지냈다. 그는 취임 뒤 “이제 북한에 아픈 말도 해야할 시점”이라며 북한 인권 문제를 공개 거론했다.

94년 국무총리가 되자마자 그해 7월로 예정됐던 김영삼-김일성 간의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했으나 예정일을 보름 앞두고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총리 시절 그는 항상 몸을 낮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수대교 사고 땐 곧바로 사표를 냈으나 반려됐다.

남북 관계를 다루다 보니 곡절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85년 적십자 회담에서는 벌어졌던 돌발 사태다. 회담 첫날 북측은 남측 대표단에 총검술 매스게임을 보게 했다. 이 전 총리가 이끄는 남측 대표단은 “애초 얘기됐던 ‘청소년 체조’와 내용이 다르다”고 항의하며 공연장인 평양 모란봉 경기장에서 퇴장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총리에서 물러난 뒤 한동대 재단 이사장 등 학계 일과 청소년·사회복지·문화 관련 활동에 주력했다. 최근엔 남덕우·정원식 전 총리 등과 함께 ‘세종시 행정기관 이전 백지화’ 운동에 참여 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특2호. (02) 2227-7580.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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