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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미국 대선에 묻힌 뉴스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미국 대통령선거 관련 기사가 연일 신문 지면을 메우는 바람에 중요한 국제뉴스들이 홀대받고 있다. 사실상 전쟁상태로 돌입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문제, 지구온난화 문제를 다룬 헤이그 유엔기후회의, 발칸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자그레브에 모인 유럽연합(EU)+발칸회의 등은 평소 같으면 크게 다뤘어야 할 기사들이다.

지난 22일로 즉위 25년을 맞은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의 경우도 그렇다. 스페인 민주화의 현주소를 점검해보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36년 철권통치가 끝난 뒤 새로 태어난 민주주의 스페인이 탄생 4반세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스페인 민주화는 카를로스 왕으로부터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는 스페인 국민들로부터 '민주주의의 아버지' 로 존경받고 있다.

1975년 11월 20일 프랑코가 사망했다. 이틀 후 카를로스 왕이 즉위, 스페인엔 다시 왕정(王政)이 시작됐다. 처음엔 그의 통치가 오래 갈 것 같지 않았다. 좌파 진영은 '단명왕(短命王) 후안' 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카를로스 왕은 일찍이 프랑코의 후계자로 지명됐기 때문에 프랑코 노선을 충실히 따를 독재성향의 인물일 것으로 예상됐던 것이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카를로스 왕은 민주국가 스페인의 입헌군주로서의 길을 택했다. 81년 2월 프랑코를 추종하는 일부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카를로스 왕은 군인들에게 자신은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으며, 국외로 나갈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고, 군대는 병영(兵營)으로 복귀했다. 이로써 카를로스 왕은 군 최고사령관이자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권위를 확고히 했다.

프랑코 독재 시절 스페인은 유럽국가들로부터 '별종' 으로 취급당했다.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 바로 아프리카" 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카를로스 왕 치하에서 스페인은 과거의 불명예를 씻었다.

82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85년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함으로써 유럽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됐다. 경제적 번영도 뒤따라 현재 스페인 국민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EU 평균의 83%에 달할 만큼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당연한 결과로 카를로스 왕은 스페인 국민으로부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스페인 국민의 75%가 군주제를 지지하며, 88%가 지난 25년 동안 카를로스 왕이 이룩한 성과를 인정하고 있다.

이같은 지지율은 유럽의 다른 입헌군주제 국가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높은 것으로 다른 유럽 왕실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스페인의 지난 25년은 '성공 스토리' 다. 외국인 기자가 성공 비결을 묻자 카를로스 왕은 이렇게 답했다.

"왕이 되기 전이나 지금이나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스페인 민주화의 성공 비결은 바로 국민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지도자의 '열린 귀' 에 있다는 얘기다.

정우량 국제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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