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살인전과자 의학용으로 시신기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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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달 초 서울의 가톨릭 의대에는 살인 전과자의 시신 한구가 기증됐다. 지난달 29일 56세에 간암으로 숨을 거둔 金모(서울 신정동)씨의 시신이었다.

金씨는 생전에 장기기증을 희망했다. 여러 사람을 살리는 속죄로 한 생명을 뺏은 죄를 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암이 전신에 퍼져 각막 조차 기증할 수 없게 되자 의학 연구용으로 시신을 기증하기로 했던 것이다.

金씨에게 끔찍한 일이 닥친 건 지난 1992년 봄. 1년여 전 도박에 빠져 아내와 이혼한 金씨는 아들을 친척집에 맡기고 서울 지하철 공사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달째 임금이 밀리자 술을 마시고 하도급 업주와 다투다 홧김에 둔기를 휘두른 게 화근이었다.

金씨는 장흥교도소에서 꼬박 7년을 채우고 98년 6월 출소했다. 그러나 돌아갈 곳이 없었다.

아내는 오래 전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고아처럼 살아온 외아들을 볼 자신도 없었다.

서울 신월동 갱생보호공단 서울지부 생활원에 입소한 金씨는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공공근로.노동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1년 뒤 손에 쥔 8백만원으로 지하 단칸방을 얻었다.

그 뒤에도 金씨는 술 한모금 입에 대지 않고 부지런히 일했다. 번 돈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썼다.

그러던 지난달 초 金씨는 갑작스레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죽음을 앞둔 그는 대구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아들(24)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은 처음에는 자신을 버린 살인자 아버지를 외면했다. 그러나 金씨의 상담을 맡았던 공단 직원 鄭봉영(34)씨가 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 주자 아들의 원망은 사그라들었다.

지난달 29일 아들은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왔다. 10년 만에 만난 부자이지만 대면은 길지 않았다.

두 시간여 만에 金씨는 숨을 거뒀다. 아버지가 남긴 시신기증서 보호자란에 아들은 떨리는 손으로 이름 석자를 적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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