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계산은 야물고 분명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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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늘은 대학입시 수능시험일이다. 난이도가 높지 않은 문제들이 출제된다고 하니 웬만큼 공부한 수험생일 경우 실수가 없으면 정답 맞히기가 수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만약 일반국민을 상대로 근래 정부가 추진해온 몇가지 정책효과를 알아 맞히는 시험을 치르게 한다면 정부의 예상과 다른 답안이 속출할 듯하다.

건전한 상식과 단순한 산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중 세가지 대표적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첫째, 정부의 남북관계 계산법이 이해하기 어렵다. '햇볕정책' 이 지난 50여년간의 장벽에 대한 구멍내기에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고 향후 성공을 거두기 바란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이해득실 대차대조표를 보면 남한이 자금.식량.비료 등 준 것은 많은 반면 받은 것은 별로 없다.

이산가족 상봉도 북한은 남한 출신 중 체제 우월성 선전에 적합한 인사들만 골라 내려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우화 속의 태양이 바람과 옷벗기기 경쟁에 이긴 것은 행인이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이지 해를 가릴 양산 하나만 가졌다 해도 얘기는 달랐을 것이다.

옳든 그릇되든 그들 나름의 이념으로 주민을 무장시킨 북한에 비하면 옳은 이념이 있는 데도 국민의 정신무장이 한심하게 해이한 것이 남한의 형편이다. 게다가 중장거리 유도탄 등 우세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선동선전도 앞선다.

그러한 상대를 향해 볕을 쪼인다면 북한은 반사경으로 제 몸을 가릴 뿐만 아니라 빛을 되쏘아 남한의 눈을 멀게 할 수 있다.

실제로 남북교류 이후 남한 내부여론에 위험스러우리만치 길고 깊은 크레바스가 파이고 있는 셈이다.

햇볕정책이 성공하려면 발광체가 막강한 에너지 공급을 밑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빛을 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남한 경제의 에너지는 유한하고 외국자본도 남한이 믿을 만한 담보감으로 보여야 대북경협에 끌어들일 수 있다.

대북사업에 앞장섰던 국내기업들이 예외없이 부실이거나 부실화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북사업의 예상수익흐름을 장기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점은 당연하지만 경제적 타당성이 입증되는 할인율을 구하기 어렵다. 야문 경제계산으로 대해야 북한이 변한다.

통일과업에 성공하려면 남한의 경제체력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취지의 신중론을 반통일론으로 몰기도 하는 통일정책당국의 고등산술은 무엇인가.

둘째, 생산적 복지정책도 간단한 덧셈과 뺄셈으로 이해가능해야 한다. 생산은 나라 살림밑천(국부라 하자)에 보태는 일이고, 복지는 근본적으로 국부를 축내는 일이다.

고도 성장과정에서 정당한 분배몫이 돌아가지 못한 중소규모 이하 기업의 생산직 근로자들의 생활수준 향상은 여전히 바람직한 과제인 반면 공기업 및 대기업의 경우 잘 조직된 노조활동 덕분에 고임금의 철밥통을 차고 있어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강성노조를 설득하는 한편 불가피한 경우 대결도 불사하는 정부자세가 오리무중이다. 3D업종 기피현상이 만연해 있고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초생활보호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국부에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것이 인기영합에 도움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지만 그것은 국력을 탕진하는 첩경이다.

셋째, 금융지주회사 중심의 구조조정방식이 설득력이 취약하다. 부실은행 몇 개 합쳐 덩치 키우면 우량은행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더욱 부실한 은행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1992년 법제정 당시 금융지주회사제는 정상은행의 소유ㆍ지배문제 개선을 겨냥한 것이었지, 부실은행 뭉치기가 목적이 아니었다. 개별 부실은행이 먼저 인력감축 등 경영개선노력이 선행된 다음 공적자금 투입이 뒤따라야 한다.

부(마이너스)의 값을 아무리 합쳐도 정(플러스)값이 되지 못한다. 지난번 경제팀의 공식을 현재 경제팀이 그대로 답습한다면 내용없는 형태만의 구조조정에 그칠 것이다.

국민의 건전한 상식으로 납득가는 정책을 펼쳐야 신뢰받는 정부가 된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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