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칼럼] 의문사와 비뚤어진 권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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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민주화투쟁이 한창이던 1986년 6월 부산 송도 앞 바다에서 한 젊은이의 익사체가 스쿠버다이버에게 발견된다.

3개의 시멘트덩이를 매단 채 수심 17m의 깊이에 누워 있는 자세로 발견된 그는 그해 서울대 지리학과에 입학한 김성수군이었다.

*** 공권력에 의한 살인 밝혀야

경찰은 이 사건을 성적불량을 비관한 자살로 마무리해버렸다. 대학교에 막 입학해 아직 첫 학기 시험도 치기 전인데 그는 성적을 비관해서 시멘트덩이를 세개나 몸에 묶고 방파제를 기어 넘어가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강릉 출신인 그는 몇차례 군사통치 반대 데모에 가담했었고 죽기 며칠 전 자취방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나갔다가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의 바닷속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소식을 듣고 부산에 내려갔을 때 시체는 이미 화장돼버린 후였다.

지난 유신시절 또 5공 군사정권 시절 이렇듯 의문 속에 죽어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천에서 노동운동 하다가 갑자기 사라져 고향마을 뒷동굴?변사체로 발견된 청년이 있는가하면, 간첩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취조를 받다 화장실에서 투신자살했다는 교수도 있다.

이들 중 몇몇 사건은 유가족의 끈질긴 요구로 국정조사 등 공개적인 진상규명 노력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그늘 속에 묻혀 있다. 그것은 그들의 상당수가 반정부적이거나 또는 반체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군부통치의 정권 방어 수단이었던 안보와 체제논리에 저항한 사람은 설령 죽더라도 죽음의 정당성 여부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잘못인 것처럼 여겨지도록 몰아가던 경직된 사회의 눈초리 때문이었다.

이제 이런 의혹들을 규명하기 위한 의문사(疑問死)진상규명특별법이 제정되고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가 마침내 발족했다.

이 위원회는 해방후 흐지부지 끝나버린 반민특위(反民特委)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문제는 이 의문사 진상조사위가 과연 얼마만큼 군사정권의 반인권적.반민주적 범행을 규명해 낼 것이며 얼마만큼 그것을 단죄하고 청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위원회의 활동시한은 1년도 채 못된다.

연말까지 진정을 받아 내년 6월까지 조사를 하고 필요하면 3개월 더 연장 조사해서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를 의뢰하는 것으로 이 위원회의 역할은 끝이다.

의문사 진상규명이란 게 '공권력에 의한 살인' 행위를 규명하는 것인데 이런 미약한 권한으로 뭘 조사할 수 있을는지, 한낱 구색 갖추기에 그치지 않을는지 우려도 없지 않다. 특히 해당 정부기관들이 얼마나 협조하겠느냐는 것이다.

앞으로 의문사조사 진정이 얼마나 더 들어올지 모르지만 현재까지 대체로 파악돼 있는 의문의 죽음은 44명이다. 그런데 거기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곳이 안기부(현 국정원)와 군.경찰과 같은 힘센 기관들인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도 이념의 수용지평이 넓어지고 인권에 대한 해석이 확대된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래도 아직 그들의 죽음을 보는 우리의 시각에는 안보의 굴절된 차광판(遮光板)이 완전히 벗겨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가족이나 친구 중의 누구 한사람이 만약 권력에 저항하고, 정부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합당한 절차도 밟지 않고 매맞고 죽어갔다면 그것을 우리는 용납할 수 있겠는가. 설령 그가 '빨갱이' 였다고 치더라도 말이다.

*** 진상조사委 활약 기대

얼마 전 칠레의 전 독재자 피노체트를 영국 경찰이 구속해서 국제적인 파문이 인 적이 있다. 그가 쿠데타를 일으켜 칠레를 십수년간 철권 통치하는 동안 수천명이 살해되고 수많은 의문의 실종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칠레의 수십년 군부통치의 후유증일 뿐 아니라 바로 우리가 앓아야 할 고통이기도 하다.

이 의문사 진상규명의 출발점은 바로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한 정치화된 공권력에 대한 검증이다. 그것을 이 정부가 과연 해낼는지, 심히 의심스러운 바가 없지 않다. 만약 이 의혹이 또 제대로 규명되지 못할 염려가 엿보이면 특위의 활동시한을 연장하고 특별조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든지 해야 한다.

의문사 진상규명이 과거의 독재정치에 대한 재조명이라면 언젠가는 현재의 축소 지향적인 은폐수사도 현재의 부패정치와 함께 재조명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위원회의 활동을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시민적 관심이다.

김영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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