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원섭 '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어떤 이는 내 얼굴을 칭찬하고

어떤 이는 보고서 침 뱉더라만

이것은 사실 내 얼굴이 아니란다

이것은 서글픈 나의 탈이란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쓰고 있던 빛나는 영광이란다

내 삶의 물줄기의 흘러나오는

젖처럼 솟아나는 샘물이란다

죽을 때까지 벗지 못하는

무서운 금단의 율법이란다

조상으로부터 피로 이어온

서리보다 더 엄한 계명이란다

- 이원섭(76) '탈' 중

사람은 얼굴 하나를 갖고 태어나고 얼굴로 세상을 살아간다. 때로 웃고 우는, 분명 내 얼굴이지만 내 얼굴이 아닐 때가 있다. 나무로 깎은 하회탈처럼 겉얼굴과 속얼굴이 서로 다를 때가 있다.

그러나 노시인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썼던 빛나는 영광이며 솟아나는 샘물로 찬미하고 있다. 죽는 날까지 벗을 수 없는 율법이고 엄한 계명인 것이 얼굴임을 나는 왜 오늘토록 모르고 살았을까.

이근배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