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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희 기자의 의료현장 (20) 서울대병원 외과 갑상선암 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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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규 교수(중앙)가 정광모씨의 왼쪽 갑상선암 제거 수술을 하고 있다.[서울대병원 제공]


#목을 뒤로 젖힌 자세로 수술

1월 14일 수술을 위해 입원한 정씨는 다음날 오전 7시30분, 팔에 굵은 주삿바늘을 꽂은 김씨가 수술실로 들어왔다. 의료진은 일단 정씨 몸 여기저기에 심전도·혈압·산소 포화도·체온 등을 측정할 수 있는 기구를 장착해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혈압 116/88㎜Hg, 맥박 1분에 70회, 체온 36.5도’. 모두 정상임이 확인되자 8시에 전신마취가 진행됐고, 정씨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갑상선은 목 중앙에 위치한 장기다. 따라서 수술 시야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선 환자의 목을 뒤로 젖힌 상태라야 한다. 이를 위해 정씨의 목 뒤에 ‘갑상선 베개’가 놓여졌다.

자세가 고정되자 수술 부위를 넓게 소독약(베타딘)으로 닦고, 갑상선이 위치한 피부에는 가로 20㎝, 세로 15㎝ 크기의 방수 밴드가 붙여졌다. 연이어 환자의 몸 위로 세 장의 방포가 덮였다. 얼굴은 천 대신 투명한 무균 비닐로 덮는다.

“왜 비닐로 덮죠?”(기자)

“목을 젖힌 상태에서 수술을 하다 보니 기도에 삽입한 관의 위치가 바뀌거나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투명한 비닐로 덮어야 이런 변화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관찰해 대처할 수 있거든요.”(윤 교수)

오전 8시25분, 수술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자 윤 교수가 환자의 오른쪽에 서서 집도를 시작한다.

#신경과 부갑상선 다치지 않게 해야

“몇 ㎝나 절개합니까?”(기자)

“수술 방법에 따라 다른데요, 이 환자는 목 주름을 따라 4.5㎝ 정도 절개해야 할 겁니다.”(윤 교수)

말을 마친 윤 교수가 재빨리 손을 움직여 피부를 절개하니 누런 지방이 보이고 그 밑으로 근육이 드러난다.

정씨의 수술 전 갑상선 CT 사진.

“이 목 근육들을 잘 박리해서 수술할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게 중요해.” 수술을 하면서도 윤 교수는 수술 보조 전공의에게 필요한 교육을 한다.

박리가 끝나자 갑상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환자는 갑상선을 모두 제거해야 하지만 암 덩어리는 왼쪽부터 절제해야 해. 물론 이때 신경과 부갑상선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한 건 알지?”(윤 교수)

갑상선 주변에는 목소리를 담당하는 신경 이 지나가는 데다 양쪽 위·아래 네 곳에 부갑상선이 존재하는데 한 개의 무게는 0.2~0.5g이다. 파라토르몬(PTH)이란 호르몬을 분비해 혈중 칼슘 농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수술 칼이 움직이고, 전기로 몇 번 지혈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왼쪽 갑상선이 정씨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시계는 8시43분을 가리킨다.

수술실 간호사는 조직을 들고 급히 밖으로 나간다. 응급으로 조직검사 결과를 재차 확인하기 위해서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윤 교수는 제거한 주변의 림프절도 모두 제거한다.

8시50분, 조직검사 결과 암세포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수술실에 전해졌다. 이후 오른쪽 갑상선 제거 수술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9시40분, 모든 수술 과정을 끝낸 윤 교수가 수술실을 나왔다. 남은 의료진은 환자 수술 부위를 마무리한 뒤 몸에 부착한 장치를 떼고 마취가 깰 때까지 관찰해야 한다.

#3일째 부작용 없이 퇴원

수술 후 의식을 회복한 정씨는 목소리도 쉬지 않았고, 출혈도 부갑상선 손상 때 나타나는 손·발 저림 증상도 없는 게 확인됐다. 그는 3일째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여성암 1위 … 초기엔 증상 전혀 없고 치료 잘 되는 편

2005년 이후 여성암 발생률 1위를 차지하는 갑상선암. 반면 남성 암 중에선 10위 밖이다. 암 발생이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과 관련될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다. 다행히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천천히 자란다. 또 약물 치료에도 반응을 잘한다. 갑상선암은 다른 암이 5년 생존율을 보는 데 비해 10년 생존율을 관찰한다.

갑상선암 환자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증한 이유는 환자 자체가 증가해서라기보다 중·노년 사이에서 건강검진이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또 초음파 진단기술이 발달해 아주 작은 암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원래 갑상선 암은 암세포가 자라 주변 조직을 압박하기 전까진 증상이 없다. 실제 혹이 만져져 병원을 찾았다가 갑상선암 진단을 받는 환자는 열의 한 명도 안 된다. 증상 없이 천천히 자라다 보니 이전에는 암이 있는 줄도 모른 채 다른 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많았다.

갑상선암은 조직 검사 소견에 따라 유두암(80% 이상), 여포암(5~10%), 수질암과 림프암(5% 미만), 그리고 1% 미만인 미분화암으로 분류된다. 치료 효과는 빈발하는 암일수록 좋다. 유두암은 10년 생존율이 90~95%, 여포암은 80%를 웃돈다. 반면 수질암과 림프암은 50% 정도며, 미분화암은 진단 후 몇 달 안 돼 사망할 정도로 예후가 불량하다. 암 치료는 암의 종류·연령·진행 정도 등에 따라 다르다. 통상 유두암과 여포암은 갑상선 제거 수술과 방사선 동위원소 치료를 받게 된다. 수질암은 수술로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며, 림프암은 방사선이나 항암치료가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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