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특집] LG화학 이경호씨의 입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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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꿈과 희망을 간직하는 게 중요합니다."

올 1월 LG그룹 공채에 합격한 이경호(李敬浩.29.사진)씨. 그는 외환위기로 취업 대란이 빚어졌던 지난 98년 초 대학을 졸업하는 바람에 취업 재수생 대열에 끼어야 했다.

한국 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한 李씨는 9백점대의 토익점수까지 갖춰 4학년이 될 때까지만 해도 "졸업과 함께 원하는 대기업을 골라 입사하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고 한다.

그러나 졸업이 다가올수록 채용시장은 점점 얼어 붙기 시작했고, 다급한 마음에 신입사원을 뽑는 기업들마다 원서를 냈다고 한다.

삼성.현대.LG.대우 등 대기업은 물론 언론사.금융기관 등 무려 20여 군데에 무차별 '입사지원 공세' 를 펼쳤다.

그러나 결국 최종 합격 통지서를 받지 못했다. 입사지원용 사진과 서류만 50여장을 날렸다. 유일하게 H그룹에 합격했지만 그마저 구조조정으로 입사가 취소됐다. 李씨는 이때 자신이 뒤쫓았던 취업에 대해 허무함을 느꼈다.

李씨는 수개월간의 쓰라린 '백수생활' 끝에 마음을 다잡았다.

전공인 중국어를 살려 해외영업 파트에서 일하겠다는 미래의 청사진을 그렸다. 놓았던 중국어 회화책을 다시 잡고 무역영어 공부도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닌 사회 진출을 위한 준비였다.

98년 4월 李씨는 조그마한 선박회사에 취업했다. 실전에서 영업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수출입품을 회사의 배에 싣도록 유치하는 일이 그의 업무였다. 양복이 땀에 절고 구두 밑창이 닳도록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다.

대학시절 꿈꾸던 직장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몰랐던 사회의 면면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리고 올초 보다 넓은 '무대' 를 찾아 LG그룹에 지원했다. 무엇보다 영업의 기초를 알았기 때문에 면접관들 앞에서도 자신이 있었다. 조그마한 회사였지만 전 직장에서 열심히 익힌 실무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결과는 합격. 회사는 1년의 경력도 인정해줬다.

李씨는 현재 LG화학 해외영업팀에서 중국.동남아시아를 무대로 일한다. 지난 7월에는 LG화학 최초로 베트남과 2만달러짜리 계약을 성사시켜 팀장의 칭찬도 받았다.

李씨는 "대기업 입사에 실패한 뒤 1년여 동안 막연히 기다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때의 영업 경험이 지금 저의 무기거든요" 라며 밝게 웃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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