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충청 천도 반대한 이유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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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호 01면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1977년 수감 중 쓴 편지에서 수도 이전 반대론을 역설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후인 지난해 9월 시대의창이란 출판사가 펴낸 '옥중서신 1-김대중이 이희호에게'에 실려 있다. ‘각국 수도에 관한 고찰’이란 소제목이 달린 글(51~57쪽)에서 김 전 대통령은 “지금 서울의 인구는 대폭 대전 지방으로 이주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천도(遷都)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절대로 그래도 안 될 것”이라고 적었다. 글을 쓴 날은 77년 11월 29일로 돼 있다.

그는 런던·파리·도쿄 등의 예를 들면서 이들은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최전방에 수도를 세운 반면 신라·백제·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가 국토의 중앙에 있어 국내 행정과 집권자의 안전을 위주로 한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에서 강적이 오면 (집권층이) 남으로 도망가고 남에서 오면 북으로 달아났다”고 비판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이 글을 쓸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밝혔다(77년 2월 10일 연두보고). 김 전 대통령은 글에서 “요즘 소식을 들으니 정부의 행정기관이 대폭 충청도 지방으로 이전할 것이라고 한다. 세계의 수도 위치를 역사적으로 고찰해보면 참으로 흥미 있고 교훈적이다”고 썼다.33년 전에 쓰여진 김 전 대통령의 글이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정치권의 세종시 논란과 무관치 않다.

DJ ‘옥중서신’서 수도 이전 반대한 까닭
런던,파리,도쿄 … 외적 침입에 맞서 최전방에 수도 세워

김 전 대통령은 편지에서 주요국의 수도가 형성된 역사적 과정과 우리나라의 역대 수도에 대한 평가 등 ‘수도관(首都觀)’을 담고 있다. 다음은 편지글의 요약.“영국의 수도 런던은 템스 강 입구에 있다. 이는 9~10세기 템스 강 입구 부근에 자리 잡은 7왕국 중 하나였던 웨섹스가 템스 강을 타고 쳐들어온 노르만인을 최선봉에서 싸워서 지켜냈기 때문에 자연히 영국을 통일하게 되고 런던은 전 영국의 수도가 됐다. 프랑스의 파리 역시 노르만인과의 투쟁, 숙적 영국과의 싸움에서의 대표였으며 따라서 수도가 됐다. 베를린은 독일의 가장 동쪽에 있다. 10세기 이후 서구 기독교 세계의 가장 큰 위협인 러시아에 대해 프러시아는 그 방위의 일선이었으며 따라서 그 수도인 베를린은 독일 통일 후에도 수도의 영광을 누렸다.

일본이 명치 유신 이후 왕정복고를 해놓고도 적의 도읍인 강호(도쿄)로 천도, 교토의 퇴영을 피하고 서양문화를 맞이하는 태평양의 파도의 정면에 자리 잡은 것은 큰 결단이었다.신라는 통일했으면 마땅히 수도를 북으로 전진시켜 함경도 전체와 평안도 태반을 차지한 발해에 대처했어야 했는데 그런 뜻도 품지 않았다. 백제는 광주를 서울로 정했다가 공주·부여 등 남으로 피해만 내려왔다. 고려는 왕건이 고구려의 옛 땅 만주를 수복한다고 명분만 내세웠지 수도를 본거지인 송도로부터 평양으로 전진시키지 않았다. 이조는 서울을 계룡산으로 옮겨 갔다 한양으로 옮겨 왔다 했는데 정치·국방의 이유가 아니라 풍수설에 정신이 팔려 지관들의 혹설을 믿고 수도를 정한 것이다.

세계의 수도는 지리적 중심지라는 이점이나 국왕의 편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토방위의 전방위에서 싸우고 짓밟히고 되찾고 하는 피투성이 투쟁 속에서 일국의 수도라는 영광과 국민의 총애를 얻게 됐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수도의 역사는 아주 다른 양상을 띠었다. 불행한 분단의 결과이긴 하지만 지금의 서울의 위치는 처음으로 가장 올바른 수도의 자리가 된 것이다. 한강 북쪽, 휴전선에서 불과 25㎞에 있는 수도, 거기서 정부가 국가의 모든 지도적 인물들이 국가 방위에 끊임없이 긴장하며 숨쉬고 있을 때 그 남쪽의 국민의 믿음과 협력의 마음은 자연히 솟아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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