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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칼럼] 골퍼 최경주의 벤처정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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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최경주(30)선수가 상금랭킹 1백25위 안에 들지 못해 '골퍼들의 지옥' 이라는 Q(퀄리파잉)스쿨로 내려가게 됐다.

Q스쿨은 PGA 투어에 참가할 선수를 뽑는 시험인데 전세계의 내로라 하는 골퍼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웬만한 대회 톱10에 들기보다 어렵다.

Q스쿨은 1차-2차-3차 세단계 시험으로 치러지며 올해 1차시험에는 전세계에서 1천여명이 참가, 그중 절반이 2차시험 응시자격을 얻었다.

한국PGA테스트에서 수석을 한 테드 오와 고교생 유망주 김성윤도 응시했다 낙방했으니 그 수준을 짐작할 만하다.

2차시험은 나흘간 72홀 스트로크 플레이를 벌여 1백50명을 추리게 되는데 수준은 1차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 누구도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

최종전은 그야말로 지옥의 레이스. 2차 합격자들과 PGA 투어 상금랭킹 1백25위 이하의 선수 25명이 모여 엿새간 1백8홀 스트로크 플레이로 맞붙는데 여기서 35명이 추려져 내년도 투어참가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올해 초 최경주 선수가 PGA 투어에 출전하면서 "1백25위 안에 드는 것이 목표" 라고 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박세리.김미현 등 여자프로들의 경우로 보아 목표 1백25위는 좀 패기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남자투어는 워낙 선수층이 두터운 데다 실력이 평준화해 있어 경쟁이 여자투어와는 비교가 안된다.

상금 50위권 밑으로는 순위당 평균 6천달러 차이밖에 나지 않아 매대회 순위가 바뀔 정도다.

올해 처음 PGA 투어 멤버가 된 최경주 선수가 낯선 코스에 적응해가며 이들과 싸워 랭킹 1백25위 안에 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의 골프인들은 Q스쿨행만은 없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국내투어와 일본투어에서 상금과 랭킹이 보장됐던 그가 '안정된 생활' 을 과감히 떨치고 미국 무대에 뛰어든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9월 에어캐나디언챔피언십에서 8위를 한 바 있어 부분적으로 투어에 참가할 자격(컨디셔널 시드)도 있으나 5일 "다시 Q스쿨에 도전하겠다" 고 단호히 밝혀 또 한번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최근 한 사이비 벤처기업인이 권력유착과 금융기법 등을 통해 일확천금을 노린 사건으로 벤처업계 전반에 침울한 분위기가 깔린 데 비해 최경주 선수의 벤처정신은 한줄기 소나기 같기만 하다.

권오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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