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 칼럼] 부패와 결전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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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 부패.한탕주의.도덕 불감증이 심각하다.

지난 40년간 경제적으로는 '한강의 기적' 을 이뤘다고 하지만 가치관 파괴, 윤리.도덕의 황폐화가 위험수준을 넘었다.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선 모르지만 우리 사회의 이런 부정.부패.부도덕 구조로는 선진국으로의 비상은 불가능하다.

한때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야당 지도자들은 우리 사회의 부패 원인을 '정통성 없는 권력의 천문학적인 정권유지 비용' 때문으로 돌렸다.

그런데 권력의 전통성을 회복했다는 민선 정부 아래서도 우리 사회의 부패풍조는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다.

최근의 한빛은행 부정대출사건, 동방금고 불법대출 및 로비 사건의 경우에도 탐욕스런 기업인뿐 아니라 감독관청을 포함해 관계.정계.언론계 등 힘깨나 쓴다는 지도층들이 단골처럼 돈냄새 나는 곳에 엉켜 들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 상반기까지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난 벤처.코스닥 열풍은 한바탕의 머니게임이었다.

개중에는 획기적 기술도 없이 매출과 이익도 별로 못 내는 기업이 주가를 수백배나 늘려 수천억에서 조(兆)단위까지의 돈을 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결탁하거나 도움을 주고 받은 펀드매니저.관계.정계.금융증권계 인사들이 적지 않은 이득을 보았다고 한다.

결국 그로 인한 손실은 '상투를 잡은' 개미군단과 기관에 돌아갔다. 기관의 손실은 정부가 제 호주머니 돈 쓰듯 하는 공적자금으로 메우려 할 터이니 결국 국민 혈세로 돌아온다.

이런 부정.부패.한탕주의 풍조 속에서 2세를 제대로 교육시키고 나라의 발전을 지속시킬 수 있겠는가.

이제 부패는 단순히 나라 안에서 국민의 도덕성과 정치.경제.사회의 공정성.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인만이 아니다.

지난해 2월 '해외 뇌물방지협약' 의 발효로 국제사회에서 한 나라가 살아 남느냐가 걸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됐다.

더구나 아주 멀지 않은 장래에 실현될지도 모를 국토와 민족의 통일이란 과제를 생각하면 사태는 심각하다.

지금의 정의롭지도 못하고 부패된 구조로 통일과 통일 이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는가.

북한도 적지 아니 부패했다 하나 우리 사회에서 부패는 사회의 분화.분열을 심화시키지만 어떻든 북한 사회는 종교적이라고 할 만큼 구심력이 강한 사회다.

이제는 나라의 발전.번영이나 통일을 위해서도 부패의 고리를 단호하게 끊어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해 지도층이 앞장서야 하는 것은 물론 국민적인 일대각성과 회개가 요구된다.

우선 부패추방과 국정의 투명성확보에 국가시책의 우선순위를 두어 지속적인 교육 및 캠페인과 함께 제도 개선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부정부패 불법을 비판하고 검소질박한 생활과 준법을 고취하는 교육과 캠페인에는 정부뿐 아니라 종교계.각급 학교.언론.시민단체 등 범국민적으로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또한 부패사범은 성역없이 철저하게 수사해 법에 따라 처벌하는 엄정한 법 집행의 전통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지금처럼 편파수사니 권력 주변은 봐주느니 하는 비난을 남겨서는 불법.부패를 막을 수 없다. 부패하면 끝까지 추적당해 처벌받는다는 공포심이 부패의 유혹을 차단한다.

부패의 소지를 없애고 부패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하도록 법과 제도를 완비하는 것도 급하다. 보다 강화된 부패방지법을 제정해 강력한 부패추방기구를 만들고, 정치자금법도 고쳐 정치인들의 부패행위 여지를 봉쇄해야 한다.

규제개혁위 같은 부패소지개혁위도 구성해 부패행위 소지가 있는 법령의 개폐작업을 맡기는 것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행정행위의 투명성이 부패 소지를 줄인다는 차원에서 예외와 제약이 너무 많은 현행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도 대폭 개방적으로 고쳐야 할 것이다.

부정.부패는 한때의 캠페인이나 엄벌로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행정과 거래가 룰에 따라 행해지며, 부패를 혐오하고 부당한 이득을 창피스럽게 생각하는 의식이 국민 몸에 밸 때 가능하다.

이 일이 세월이 간다고 저절로 될 일은 아니다. 지도자가 앞장서고 의식있는 국민들이 솔선해 범국민적인 대각성과 실천으로 이끌어야 한다.

성병욱 <중앙일보 고문.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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