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하는 청춘의 상징 ‘호밀밭의 파수꾼’ 떠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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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미국 오하이오주 오랜지 공공도서관에 쌓여 있는 『호밀밭의 파수꾼』 등 샐린저의 저서들. 배경에 그의 사진이 보인다. [AP=연합뉴스]

전세계적으로 65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인 미국 소설가 J D 샐린저가 27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코니스의 자택에서 타계했다. 뉴욕에 있는 샐린저의 문학 에이전트인 해롤드 오버 어소시에이츠는 “샐린저는 지난해 5월 엉덩이뼈가 부러진 부상에도 불구하고 연말까지 훌륭한 건강상태를 유지했다. 그의 사망은 자연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91세.

샐린저는 대표작인 장편 『호밀밭의 파수꾼』, 소설집 『아홉 가지 이야기』 등 많지 않은 작품으로 순식간에 명성을 얻었다. 특히 자전적인 색채가 짙은 『호밀밭의 파수꾼』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컬트적인 사랑을 받으며 반드시 읽어야 하는 통과의례적인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 2차 세계대전 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소설책 중 하나로, 3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요즘도 매년 페이퍼백 판이 25만부씩 팔릴 정도다. 1998년엔 미국의 랜덤하우스 출판사가 20세기 영미 100대 소설로 선정하기도 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20세기 중반 청춘의 불안과 그늘을 표출했다. 일례로 1980년 비틀스의 멤버 존 레논을 살해한 마크 채프만이 “내 범행 동기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한 구절에 나와 있다”고 발언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 ‘이유 없는 반항’과 함께 1950년대 기성 사회에 대한 젊음의 반항을 대변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단골 거론되는 미국의 소설가 필립 로스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포함한 샐린저의 작품이 인기 있는 이유는 동시대(의 문제)에 등돌리지 않고 개인과 세계 간의 의미 있는 갈등을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샐린저는 1919년 뉴욕에서 육류와 치즈 수입상을 하는 유대계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맥버니 중학교에 진학했으나 2년 만에 쫓겨난 그는 16살 때 밸리 포지 군사학교에 진학한다. 졸업 후 뉴욕대에 등록했으나 1년 만에 그만둔다. 5개월간 유럽여행을 하고 돌아와 ‘콜리어’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같은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자신을 알리던 중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징집됐다.

51년 출간된 『호밀밭의 파수꾼』은 샐린저 자신의 맥버니 퇴학 경험을 다룬 것이다. 할리우드 스타인 윌리엄 홀든과 조앤 콜필드의 이름을 딴 소설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학교에서 쫓겨난 후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며칠간의 방황을 그리고 있다. 냉소적이고 거친 언어로 청년에는 동정적인 반면 어른들의 세계는 타락한 것으로 묘사한다. 덕분에 냉전 시기 젊은이들에게는 폭발적 인기를 얻었지만 일부에서는 “천박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샐린저는 은둔의 작가로도 유명하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1965년 발표한 작품 ‘햅워스’에 대한 반응이 부정적이자 34살이 되던 생일날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홀연 뉴햄프셔에 정착한다. 신문·잡지들은 수시로 그를 찾았지만 그는 철저히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종종 그의 여성 편력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상대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젊은 여성들이었다. 36살이던 55년 샐린저는 19살의 하버드 학부생 클레어 더글라스와 결혼했으나 67년 이혼했다. 72년에는 18살의 예일대 1학년생 조이스 메이나드와 연애 편지를 주고 받은 끝에 1년간 동거한다. 메이나드가 샐린저와 주고 받은 편지를 경매에서 팔아 치우려고 하자 98년 샐린저의 변호사가 소송을 걸어 이를 막기도 했다.  

신준봉·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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