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혁명단원이 올림픽 수영5관왕 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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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살인죄로 9년 동안 복역하다 풀려난 극좌 테러리스트가 국가적인 스포츠 영웅으로 변신, 스페인이 떠들썩하다고 영국의 더 타임스가 2일 보도했다.

세바스찬 로드리게스(43.사진)는 지난주 폐막한 호주 시드니 장애인 올림픽 수영종목에서 50m.1백m.2백m를 포함, 다섯 종목 금메달을 석권하고 이 중 4개 종목에선 세계 기록을 갈아치우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지난달 31일 귀국한 그는 스페인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6년 전만 해도 테러리스트 단체인 '10월1일 무장혁명단(GRAPO)' 의 조직원으로 징역 84년을 선고받고 9년째 복역하던 극좌 테러범이었다. 그는 1983년 사업가인 라파엘 파두라를 살해하고 수 차례 폭탄 테러에 가담한 혐의로 85년 체포됐다.

로드리게스는 해군 무관이던 아버지와 함께 항구도시인 비고에서 성장했다. 그곳에서 그는 착취당하는 부두 노동자들을 지켜보며 좌익이 됐고 테러단체에 가담해 거물이 된 것이다.

로드리게스가 석방된 과정도 극적이다. 그는 복역 8년째부터 교도소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단식을 시작했다.

모두 4백32일 동안 단식을 하면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 과정에서 단백질 분해 능력이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됐고 그는 스페인 법에 따라 94년 11월 석방됐다.

고향 비고로 돌아간 로드리게스를 맞아준 사람은 마찬가지로 테러단체 단원이던 호세 페르난데스. 그도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장애인이 됐다.

그는 로드리게스에게 복권 파는 일자리를 주선해줬고 수영 입문을 권유했다. 로드리게스의 인생은 거기서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테러리스트 시절과 옥중 단식 때의 오기로 이를 악물고 수영에 매달렸고 세계신기록 네 개를 세운 올림픽 5관왕이 된 것이다.

하지만 로드리게스는 과거가 부담스러운 듯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고 말하고 있다. 그는 "지금은 스포츠만 생각할 뿐" 이라고 말한다.

주변 친구들은 로드리게스가 현재 투옥돼 있는 과거 테러단체 동지들을 돕기 위한 자금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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