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맛기행] 담양 전통식당…서양화가 오승윤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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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마당 가득한 50여개의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맞는다.

일년 이상 묵힌 젓갈.김치.장아찌들이 빼곡이 들어차 찾아오는 이들의 입맛을 돋우는 이 집의 자랑거리다.

수수하게 차려진 방에 앉아 일행과 몇마디를 주고받노라면 큰 상이 얌전하게 들어온다.

참게장.집장.토하젓.돔배젓.멍게젓.석화젓 등 남도 맛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젓갈류. 홍어찜.갈치조림.병치조림.굴비 등 생선요리. 죽순.연근조림.호박잎.머위대를 비롯한 나물류와 장아찌 등등. 40여가지 반찬을 밥.국과 함께 한 상 흐드러지게 받고 나면 조선시대 세도가가 부럽지 않다.

안주인 윤해강(63)씨와 딸 김난이(39)씨가 해남.영광.구례.완도 등지에서 재료를 장만해 직접 담그고 차린 반찬들이다.

尹씨는 고산 윤선도의 11대 손으로 어려서부터 보고 들은 상차림을 재현해 전통의 맛을 살려내고 있다. 우리 입맛마저 서구화되는 게 안타까워 1987년 이 집을 냈다고 한다.

된장과 고추장 맛을 내기 위해서 옛날 할머니들이 만들었던 제조법을 따르고 있다. 친정 마을에서 재배한 우리 콩으로 메주를 만들 때 꼭 짚을 사용한다.

청국장 만들 때도 콩을 삶아 시루에 담아서 짚으로 띄워내는 데 4일 걸리는 옛날방법을 사용한다.

젓갈류는 보통 한두 해 삭힌 것들이고 더덕.무.양아.깻잎.마늘 장아찌는 2~3년 된 것들이다. 장아찌는 일단 고추장으로 담근 다음 1년 뒤 새 고추장으로 다시 버무려야 제맛이 난다고 한다.

자극적인 음식에 지친 도시민들이 편안한 시골 외갓집 같은 분위기에서 우리 음식으로 입맛을 돋우고 싶을 때 찾을 만하다.

어린 자녀를 동반하면 어린이는 셈하지 않는다. 2인 기준으로 한 상에 4만원.

인근에 소쇄원.명옥헌.식영정이 있어 가사 문학의 고향을 둘러보는 기쁨을 보탤 수 있다. 광주역에서 전남 담양군 고서면 고읍리 전통식당까지는 승용차로 20분거리다. 061-382-3111.

중진 서양화가 오승윤(61)씨는 "최근 러시아 대사부부와 함께 이집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며 "찰밥.메주.야채를 발효시킨 집장이나 참게장 같은 음식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고 말했다.

그는 외국 손님들이나 아주 친한 친구들이 찾아오면 전통의 맛을 지키고 있는 이 집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吳씨는 선친인 오지호 화백의 초가(광주시 동구 지산동)를 지키며 토속적 정서가 가득한 산.섬.새.물고기 등을 단순화시켜 전통색으로 묘사, 세계적인 구상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광주=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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