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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관광객… '복제' 고택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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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두암고택. 400여년 전인 1590년 세워져 지금도 경북 영주시 이산면 신암2리에 현존하는 건축물이다. 본채 6칸에 사랑채.문간채.사당 등으로 꾸며진 口자형 기와집으로, 경북도 유형문화재(제81호)이기도 하다.

해우당고택. 1879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지어져 현재 김필영씨가 소유하는 경북도 민속자료 92호 건물이다. 또 장휘덕가옥(평은면 금광리)은 1900년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현존 초가집이다.

영주시에 산재한 이들 고택이 한 장소에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다. 국내 첫 시도다.

경북도와 영주시는 순흥면 청구리 1만7000여평에 현존하는 문화재급 기와집과 초가집.정자.서낭당 등 76채를 본 떠 '선비촌'을 조성, 지난달 22일 개촌식을 가졌다. 선비촌은 소수서원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이들 건물은 원 고택과 크기는 물론 목재 등 자재도 같은 것을 썼다. 다른 게 있다면 방향 정도다. 여기저기 흩어진 건물을 한 장소에 모아 마을을 만든 때문이다.

그래서 수몰 등으로 이건하거나, 허물어진 뒤 다시 짓는 복원과는 다르다. 차라리 2세 가옥에 가깝다. 퇴락하는 고택에 '복제'시대가 열린 셈이다.

복제 대상은 경북도 문화재위원들이 보존 가치 위주로 뽑았다.

선비촌은 고택을 복제하느라 조성에만 1997년부터 7년에 걸쳐 165억원이 들었다. 설계는 돈화문 등 문화재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태창건축사사무소가 맡았다.

현존 건물을 다시 짓느라 어려움도 있었다. 이 사무소 하헌(45)씨는 "건물을 일일이 뜯어볼 수 없어 지붕 등 숨은 부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부분은 고건축의 상식으로 설계했다는 것. 숨은 부분은 앞으로 원 건물을 수리할 때 설계도와 비교한 뒤 다를 경우 바로잡는다는 계획이다.

조성 과정에서 지역 특성도 발견됐다. 하씨는 "영주지역은 산간지방이어서 바람을 막을 수 있는 口자형 가옥 구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영주시 권혁태(49)문화관광과장은 "관광객이 지역에 흩어진 고택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수고를 덜기 위해 한곳에 집단 복제했다"며 "가끔 원 고택의 주인이 2세 가옥에서 내력을 설명한다"고 말했다.

유교문화권 개발 사업의 하나로 조성된 선비촌은 전통생활 체험장으로 개방되고 있다. 이곳에선 전통 혼례와 제사 등이 재현되고 널뛰기.제기차기 등도 할 수 있다. 그래서 2세 건물 이외에 대장간.공방 등이 있는 저잣거리와 토속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 연자방아.물레방아.연못 등도 들어섰다.

선비촌은 벌써 새 관광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개촌된 지 19일 만에 10만여명이 다녀갔고, 이달 한달간 주말 숙박은 예약이 완료된 상태다. 영주시는 선비촌 조성으로 인근 소수서원을 찾는 관광객도 지난해보다 3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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