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집이야기] '적과의 동침' '동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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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흑백대비로 얼음같이 깔끔한 실내, 값비싼 조각장식, 모더니즘 건축의 표본 같은 사각형의 집과 파도가 거친 대서양해변‥. 이 기막힌 조화를 이루는 장소는 영화 '적과의 동침' 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남편에게 학대당하면서 살아가는 곳이다.

그 곳에서는 수건도 무늬를 맞춰 가지런히 걸어야하고, 부엌 찬장 속의 통조림조차도 줄을 맞추고 상표가 가지런하게 진열해 두어야 한다.

소위 컨템퍼러리 스타일의 실내디자인을 조금이라도 흐트러뜨리는 장식은 한가지도 용납하지 않는다.

언제 찍어도 잡지표지가 될 만한 실내다. 그러나 그 곳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남편에게 매맞는 것뿐 아니라 집 자체의 차가운 정연함에 진저리를 친다.

물에 빠져 죽은 것으로 위장해 남편에게서 도망친 주인공이 정착한 곳은 미국 중부의 한적한 소도시. 그 곳에 구한 집은 전형적인 미국의 오래된 목조가옥으로 삐걱거리는 나무 발코니와 그네, 부엌 창가의 조그만 꽃화분 등 인간미 깃들인 가정의 분위기를 흠씬 풍긴다.

이웃과의 관계도 정원을 통해 이어지는 인간적인 분위기다.

이 두 가지 집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작가는 사람이 정겹게 살아가는 곳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올해 상영된 우리 영화 '동감' 에서는 시대에 따른 두 집의 대비가 재미있다.

유지태가 사는 2000년대의 원룸형 오피스텔은 고층으로 한강의 야경이 시원하고, 실내는 흑백으로 사이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창도 전면 유리며, 커다란 어항 속의 열대어까지 차가운 느낌을 줄 정도다.

반면 1970년대 여대생 김하늘이 사는 집은 별과 달을 바라볼 수 있는 조그만 나무창과 나무책상, 침대가 포근하다.

이러한 대조는 인간성의 대비가 아닌 시대의 대비를 보여준다. 사람의 마음은 시대가 다르더라도 결국 같은 정서를 보여주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처럼 영화의 배경에 나오는 집들은 무심히 보아넘기면 아무 뜻이 없는 것 같지만, 사는 사람의 특징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의 줄거리만 따라가다 보면 놓치기 쉬운 집의 배경이나 소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영화보는 재미가 한층 더할 뿐 아니라 집꾸미기와 관련한 다양한 발견들이 가능하다.

신혜경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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