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칼럼] 한국의 강점을 살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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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I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서울에 단풍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10월에 들어와서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는 바람에 올해 단풍은 더욱 색깔도 선명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여름인 하와이에 계시는 I선생님께 보여드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中.日 잇는 요충지

사업준비 등으로 답장이 너무나도 늦어진 점을 먼저 사과드립니다. 동시에 선생의 편지에서 제안해 주신 문제에 대해 저도 얼마 전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편지의 주제는 '21세기 한국의 진로' 였다고 기억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부흥하는 초대국 중국과 경제 대국인 일본에 둘러싸여 한국 경제가 완전히 갈 길을 잃는 것은 아닌가 하고 우려하시고 계셨습니다.

확실히 한국 경제에는 본질적인 약점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먼저 국내시장이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협소하다는 점. 따라서 경제성장은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원재료뿐만 아니라 반도체나 자동차 등의 주력수출품들의 핵심기술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한국은 고부가가치 제품시장에서는 일본과, 노동집약적인 제품시장에서는 중국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21세기의 한국 경제는 정말 어려워질지도 모릅니다.

정공법은 한국 기업이 구조조정과 기술개발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저는 약간 의문입니다.

한국 사람의 문화적 전통이나 기질로 보아 기초과학분야에서의 독창성이나 제품 만들기의 '마무리' 는 아무래도 소질이 없는 건 아닐까요. 또 남북이 통일되면 독일에 필적하는 규모의 시장이 출현합니다만, 앞으로 수십년간은 규모의 이익보다 통일비용의 부담이 더 크겠지요. 따라서 한국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다른 활로를 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힌트가 되는 사건이 이달 초 도쿄(東京)에서 있었습니다. 한국과 북한의 합병기업 'U' 의 탄생입니다.

이미 모니터 조립공장을 평양에 건설, 중국으로의 수출에 성공한 한국 기업 I가 출자해 한글의 자동번역소프트 등을 평양에서 개발, 일본의 시장에 판매한다는 것입니다.

'U' 의 특징은 첫째, 북한의 기술과 한국의 자본, 일본의 시장이라는 국제적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있는 점. 둘째, 소프트 개발에 부가가치를 추구하는 점. 셋째, 그 소프트가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의 언어 장벽을 없애고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려는 기술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여기에 한국이 가야 할 길의 하나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하긴 한국은 일본과 중국이라는 대국이 주위에 있고 북한과의 통일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는 거대한 시장과 풍부한 자본, 그리고 우수한 기술의 숙련된 노동력을 낮은 코스트로 이용할 수 있는, 지리적으로 유리한 장소에 자리잡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한국인은 '제품 만들기' 는 일본 사람만큼은 못할지도 모르지만 디자인에선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인터넷용 소프트도 넓은 뜻으로는 디자인이고, 누구나 상상하는 것이 패션 디자인입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동대문 패션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부가가치가 있는 상품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정비해 젊은 디자이너를 육성한다면 앞으로 서울이 밀라노.도쿄에 못지 않은 패션도시가 되는 것도 꿈 같은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 패션.디자인 특화해 봄직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선생님이 지적하신 대로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통망이라는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합니다.

동시에 언어나 통신이라는 차원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도 한국이 일본과 중국의 일종의 매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인터넷상의 솔루션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 거주하는 3백만명 가까운 동포의 네트워크를 통해, 또는 한국의 젊은 사람에 대한 어학교육을 보다 충실히 해 일.중 2개 국어에 정통한 인재를 육성하는 방법을 통해서 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나 지도자층이 동포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또 한.일.중 공통의 기호인 한자교육에 소극적인 것은 시대의 흐름에 어긋나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립니다.

동아시아 공동체라고 흔히 말하지만 관념론이 아니라 이런 내실에 대한 논의가 한.일.중 3개국간에서 높아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위해 저도 노력을 하겠습니다. I선생님께서도 동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시 도시로(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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