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해외시장서 선전 … 경상수지 신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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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426억7000만 달러.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가 상품과 서비스 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돈(경상수지 흑자)이다. 264억5000만 달러. 이는 지난해 외국인이 국내에 투자한 금액에서 우리 기업이나 국민이 해외에 투자한 돈을 뺀 금액(자본수지 순유입)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도 지난해 무역과 투자를 통해 690억 달러의 자금이 국내로 유입됐다는 의미다. 경상수지 흑자와 자본수지 순유입액 모두 사상 최대치다. 지난해 초 급락하던 원화가치가 안정을 찾은 것도 경상수지 흑자와 자본 유입 덕분이다.

경상수지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의 흑자 규모인 403억7000만 달러를 뛰어 넘었다. 큰 폭의 흑자를 낸 것은 상품 교역에서 561억 달러나 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용을 뜯어보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면서 생긴 ‘불황형 흑자’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출은 전년보다 13.7% 감소한 3735억 달러였지만, 수입은 25.7% 줄어든 3174억 달러에 그쳤다. 내수가 침체하고 수출이 부진하면서 자본재 수입이 감소했다.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원유 수입액도 줄었다. 2008년엔 원유 수입을 위해 859억 달러를 썼지만 지난해엔 508억 달러만 썼다.

그렇다고 국내 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선전한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삼성·현대차·LG 등 국내 기업들은 지난해 해외시장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경제연구실장은 “국내 제조업체들이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수출 감소 폭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원화가치가 떨어지면서 해외여행이 줄고 내수 침체가 동반하면서 경상수지 흑자 폭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전체론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를 냈지만 12월만 놓고 보면 흑자 규모는 크게 줄었다. 지난해 12월 경상수지 흑자는 15억2000만 달러로 전월보다 27억6000만 달러 감소했다. 지난해 1월 이후 11개월 만에 흑자 폭이 가장 작았다. 다만 수입이 수출보다 더 많이 주는 불황형 흑자 구조에선 벗어나는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수출은 전월보다 15억4000만 달러 증가했지만 수입은 33억5000만 달러나 늘었다.

이영복 한은 국제수지팀장은 “올해는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국내 경기 회복에 따라 수입이 늘면서 흑자 폭이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170억 달러로 예상했다.

각종 무역 거래를 제외한 자본 유출입을 보는 자본수지는 2008년 500억8000만 달러의 순유출에서 지난해엔 순유입으로 돌아섰다. 증권투자가 지난해 506억8000만 달러의 순유입을 기록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지난해 12월의 자본수지도 전월보다 1억 달러 늘어난 16억4000만 달러의 순유입을 나타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다른 나라보다 높고 주식 가치도 저평가된 상황”이라며 “돌발 변수만 없다면 올해도 자본 순유입 추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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