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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성교육때 남녀평등·폭력해악성 일깨워줘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최근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이 공포되면서 그간 논란이 됐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나 성폭력 행위자의 신상 공개 문제가 일단락됐다.

이름은 물론 연령과 직업, 주소와 범죄사실까지 관보나 정부게시판.청소년보호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재하게 됨으로써 그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성폭력 발생률은 세계 3위로 보고되고 있다. 피해자 중 97%가 여성이고, 이 중 청소년 피해자가 반을 차지한다.

성폭력 발생률이 이처럼 세계적(?)수준인 이유는 무엇이며, 피해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종종 성폭력의 원인을 여성의 과다 노출이나 '방정하지 못한' 품행 때문이라며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를 본다. 그러나 성폭력의 발생원인은 성차별과 성의 이중적 윤리, 그리고 왜곡된 성문화와 성교육 부재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성폭력은 성욕의 자제 상실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공격적 충동과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는 인성 결함의 문제와 여성을 정복.지배하는 것을 남성적인 것으로 용인하는 잘못된 성인식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의 심각성은 나이나 성별에 따라 다르지 않겠지만 특히 청소년에게는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단계이므로 심리적.신체적 후유증은 물론 성(性)적 후유증도 심각해 전(全)인격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악몽.무기력증.극단적인 공포심은 물론 심한 경우 마약이나 알콜 중독.자살기도 등의 자기파괴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성범죄나 성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교에서의 성교육을 체계적이고 실질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얼마 전 교사의 인솔로 성문화센터를 다녀온 중학교 남학생의 경험담을 들었다.

"비디오방의 실체와 성에 대한 충격 고백, 낙태수술 비디오를 봤는데 정말 할 말을 잃었다.

뱃속의 아기 성장과정을 월별로 보고 나서 피임에 대한 설명을 청취했다.출산과정을 비디오로 본 뒤 실제 아기 무게와 같은 인형도 안아봤다. 우주 공간처럼 꾸며진 방에 들어가 미래의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인생설계표를 완성하면서 나의 미래에 대한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

이는 청소년들에게 설득력 있는 성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찾는 데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최근 교사.학생.학부모의 성교육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결혼과 사랑에 대한 긍정적이고 자연스러운 인식' '가족간 사랑의 표현법' '음란물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변별력' 등을 가르쳐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무엇보다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간 교육적 연계와 협력체계 형성' 이 필요하며 '교사나 학부모들이 아동들과 성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는 것은 공통적으로 나온 지적이었다.

지금까지의 성교육은 생물학적인 내용으로 편중됐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부터는 성교육의 목표를 양성 평등교육과 함께 폭력금지를 위한 인성교육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금욕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성교육은 청소년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절제와 규범은 물론 일탈된 행동이 자신과 주변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가르쳐야 한다.

남승희 <교육부 여성교육정책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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