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환자유화 서둘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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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년 1월로 예정된 2단계 외환자유화에 대한 우려가 높다.

각종 규제가 있는 지금도 불법.편법으로 돈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는데, 해외 송금.투자가 자유화되면 자본유출이 더욱 심해져 경제에 심각한 충격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에 비춰볼 때 이런 우려를 기우(杞憂)라고 넘겨버리기는 어렵다. 금융불안.경기침체로 불안감이 증폭되는 가운데 의약분업.정치부재 등에 대한 불만이 겹치면서 이미 뭉칫돈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올 1~7월 중 공식 해외송금만도 21억7천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63%나 늘었다. 불법 해외유출 총 규모는 수십조원에 이를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경제가 호전될 가능성도 크지 않은 현 시점에서의 외환자유화는 자본유출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의 외환사정이 이런 자본유출을 감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9월말 현재 외환보유액이 9백25억3천만달러에 이른다지만 단기외채가 4백75억달러, 외국인 증권투자가 6백50억달러나 되는 점을 감안할 때 낙관할 일은 아니다.

국제금융센터 등은 현 상황에서 외환자유화가 이뤄지면 외환위기가 재발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정부가 보완책을 내놓았지만 신고와 처벌 강화 정도로 '큰 구멍' 을 막을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외환거래를 감시하는 대외금융거래정보시스템(FIU)을 만든다지만 19명 파견인력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도 외환자유화를 일관성있게 추진하려는 정부 의지와 자유화 원칙에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정부는 우리 경제가 과연 금융소득종합과세.예금부분보장제.외환자유화를 한꺼번에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갖췄는지부터 먼저 따져봐야 한다.

이 조치는 한국 경제의 사활(死活)이 걸린 중요 사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절대 서두르지 말고 원점에서 시기 등을 재검토, 국익에 도움이 되는 최선의 결정을 내려줄 것을 정부에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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