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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신혼여행 1,000쌍 발동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국내 초유의 조종사 파업 사태가 발생한 22일 전국 공항의 전광판은 결항을 알리는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김포.김해.제주 등 각 공항에는 이른 아침부터 대한항공의 파업을 알지 못했거나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승객 수천명이 나와 환불.항의 소동을 벌였다.

◇ 항의 소동=대한항공측은 파업 안내문을 붙이고 환불 창구를 만들어 승객들의 비난과 불편을 최소화하려고 애썼으나 일부 승객들은 고함을 치는 등 격하게 항의했다.

1천여명이 농성을 벌인 제주공항에서는 사상 최악의 소동이 일어났다. 일부 승객은 창구 직원의 멱살을 잡고 '인민재판' 식 추궁을 하거나 발권창구.사무실에 난입해 기물을 부수기도 했다. 승객 50여명은 오후 6시50분쯤 활주로 진입까지 시도,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항공기가 한 편도 투입되지 않은 광주 등지의 승객들은 "숙식 등 대책을 마련하라" 며 항의했다.

22일 오후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KE905편으로 독일 쾰른에서 열리는 무역박람회에 참가하려던 ㈜퍼시스 임직원 26명은 "7개월간 해온 박람회 준비 작업이 물거품이 될 형편" 이라며 항공사의 무성의에 항의했다.

수상레저용품 제조업체 사장인 채병연씨는 "캐나다에서 온 바이어를 배웅하러 나왔는데 막판에 큰 결례를 범했다" 고 하소연했다.

또 튀니지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유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나온 한국청소년 유도대표선수단은 결항으로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에 큰 문제가 생겼다며 난처해 했다.

45편의 국내선과 7편의 국제선 운항이 취소된 대한항공 김해공항 지점에는 22일 오후 제주와 일본.태국 등으로 가려는 여행객들의 항의전화가 이어졌다.

아시아나항공에는 서울.제주행 빈 자리 여부를 묻는 승객들의 전화가 빗발쳤으며 김포공항 창구에는 오전까지 대기 승객 2백여명이 길게 줄을 서 빈 좌석이 나기를 기다렸다.

◇ 신혼여행 비상=22일은 길일이었다. 이날 오후 2시 김포에서 싱가포르행 대한항공 편으로 신혼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던 김형준.김수영 부부는 "새로운 인생의 첫 출발을 이렇게 맞게 됐다" 며 허탈해 했다.

이날 김포공항에는 방콕행 신혼부부 6백90여명이 예약된 상태였으나 항공사측은 3편 중 1편만 운항키로 해 절반 이상의 신혼부부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전국적으로 1천여쌍의 신혼부부가 탑승하지 못해 격한 항의가 벌어졌다.

제주에서는 신혼부부와 단체관광객 1만2천여명 가운데 5천여명이 결국 제주에 발이 묶이는 신세가 됐다.

◇ ASEM 참가자 출국 불편=외국정상 수행원과 취재기자들은 갑작스런 항공파업으로 차질을 빚자 황급히 비행기편을 바꾸는 등 불편을 겪었다.

이날 오후 1시30분 서울발 로마행 대한항공편으로 귀국하려던 이탈리아 기자 줄리아니 프란세스카 등 3명은 "전쟁이 끝나고 우리들이 한국땅에 포로로 잡혀 있는 기분" 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탈리아에서는 항공사가 파업을 해도 전면파업은 하지 않기 때문에 비행기를 탈 수는 있다" 고 불만을 나타냈다.

김승현·이경희 기자,전국부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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