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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눈으로 글쓴 '내 생애 가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어릴 적, 모형 기차는 아니더라도 냇물에 띄운 종이배나 저만치 멀어져가는 연꼬리를 보며 미지의 세계를 꿈꾼 경험은 없으셨는지. 때론 이웃집 형한테서 빌려온 '김찬삼의 세계여행' 을 보며 또 다른 세상에 설레였던 기억은 또 없으셨는지. 이제 흰머리가 내비치는 나이가 되어 그 시절 꿈꾸었던 일들을 일상의 현실에 견주곤 조금은 허전했던 적은 없으신지.

책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시간을 거슬러, 이젠 잃어버렸지 싶었던 기억의 편린들을 끄집어 내는데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경우 유년(幼年)의 눈으로 보는 기법을 사용한 글이 많은데 실상 '유년의 눈' 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자칫 치졸하게 끝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어쩌다 잘쓴 책을 대하면 보물을 캐낸듯 반갑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가 그랬고, 이 책 또한 그런 의미에서 분명히 '보물급' 이다.

책의 기둥줄거리는 열살소년 또마가 모형기차를 만들며 '안데스의 구름속을 올라가는 작은 기차' 를 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과정. 여기에 이혼한 또마의 엄마와 두 형, 또마의 친구와 엄마의 남자친구들과 함께 펼쳐가는 곁가지들이 기둥줄거리와 교차되며 얘기를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게다가 책 곳곳에서 만나는 또마의 놀라운 생각들. 떠나버린 남자친구때문에 우울해하는 엄마에게 '사람이 슬플 땐 추울 때처럼 서로 아주 세게 껴안으면 심장이 다시 따뜻해지는 법' 이란 생각에 어리광을 부린다든지,

이혼을 앞둔 부모를 둔 친구에게 "부모님들이 이혼하는 게 너한테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노력해야돼. 애들이 그렇게 말해주는 게 부모님한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아니" 라며 충고하는 열살배기의 모습이란…. 예전, 당신은 어떠하셨는지.

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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