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모형 기차는 아니더라도 냇물에 띄운 종이배나 저만치 멀어져가는 연꼬리를 보며 미지의 세계를 꿈꾼 경험은 없으셨는지. 때론 이웃집 형한테서 빌려온 '김찬삼의 세계여행' 을 보며 또 다른 세상에 설레였던 기억은 또 없으셨는지. 이제 흰머리가 내비치는 나이가 되어 그 시절 꿈꾸었던 일들을 일상의 현실에 견주곤 조금은 허전했던 적은 없으신지.
책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시간을 거슬러, 이젠 잃어버렸지 싶었던 기억의 편린들을 끄집어 내는데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경우 유년(幼年)의 눈으로 보는 기법을 사용한 글이 많은데 실상 '유년의 눈' 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자칫 치졸하게 끝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어쩌다 잘쓴 책을 대하면 보물을 캐낸듯 반갑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가 그랬고, 이 책 또한 그런 의미에서 분명히 '보물급' 이다.
책의 기둥줄거리는 열살소년 또마가 모형기차를 만들며 '안데스의 구름속을 올라가는 작은 기차' 를 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과정. 여기에 이혼한 또마의 엄마와 두 형, 또마의 친구와 엄마의 남자친구들과 함께 펼쳐가는 곁가지들이 기둥줄거리와 교차되며 얘기를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게다가 책 곳곳에서 만나는 또마의 놀라운 생각들. 떠나버린 남자친구때문에 우울해하는 엄마에게 '사람이 슬플 땐 추울 때처럼 서로 아주 세게 껴안으면 심장이 다시 따뜻해지는 법' 이란 생각에 어리광을 부린다든지,
이혼을 앞둔 부모를 둔 친구에게 "부모님들이 이혼하는 게 너한테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노력해야돼. 애들이 그렇게 말해주는 게 부모님한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아니" 라며 충고하는 열살배기의 모습이란…. 예전, 당신은 어떠하셨는지.
박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