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견들도 '로데오 가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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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서울 압구정동의 속칭 로데오 거리가 '애완견들의 유토피아' 로 탈바꿈하고 있다.

외국에서 수입한 애완견용 의류나 액세서리.밥그릇.쿠션과 침대 등을 취급하는 고급 페트숍과 각종 최신식 시설을 갖춘 동물병원들이 잇달아 문을 열고 있다.

심지어는 공간의 구분없이 손님들이 애완견과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는 애완견 카페까지 등장했다.

또 이들 점포 대부분은 수의사.미용사까지 고용해 애완견의 건강과 미용을 관리해주고, 개를 며칠씩 맡아 돌보며 책임지는 '애견호텔' 역할도 하고 있다.

로데오 거리에 애완견 관련 점포들이 몰려 있는 곳은 갤러리아 백화점 건너편과 학동사거리를 잇는 도로변.

지난해까지만 해도 서너 곳에 불과했던 애완견 관련 점포들이 올들어 두 달에 한 곳 꼴로 오픈, 현재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게다가 이 지역에 애견가게를 오픈하려고 찾는 사람들도 줄을 잇고 있는데 현재 마땅한 점포가 없어 대기중인 사람들도 많다고 주변 부동산중개인들은 전한다.

애견 관련 가게들이 이곳에 몰리는 이유는 압구정동과 청담동을 비롯한 강남지역에 애완견을 기르는 가구가 급격히 늘기 때문.

이 지역에서 12년째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청담동물병원 이종운(37)원장은 "압구정동 한양아파트의 경우 최근 몇 년 새 애완견을 기르는 가정이 부쩍 늘어 요즘은 다섯 가구에 한 집 꼴로 애완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 말했다.

또 이곳 점포들은 질 좋은 서비스와 위생관리로 퇴계로 애견 거리와 차별화를 한 것도 로데오 거리에 애견점포들이 번성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6월말 오픈한 '해맑은 동물병원' 의 경우 원장을 포함, 세 명의 수의사가 전공에 따라 내과.외과.임상병리 등 과별로 진료 중이다.

또 검사실.처치실.수술실.X - 선 촬영실.입원실 등으로 구분, 사람들이 다니는 일반병원 못지 않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병원의 손대호원장은 "내부 인테리어와 시설.장비를 갖추는 데만 1억여원이 들었다" 고 설명한다.

애견용품을 취급하는 페트숍에서 취급하는 상품도 대부분 수입품이나 유명브랜드들. 페트숍 코코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경우 일본산 강아지 이동장이 5만5천원, 손바닥만한 애견의류가 한 벌에 2만원, 애완견용 치약.칫솔 세트가 1만원 등 고품질의 고가품들. 털을 깎고 목욕까지 시켜주는 미용서비스도 1만5천원 이상 받고 있다.

그렇지만 이곳을 찾는 소비자들은 크게 불만이 없다.

얼마전 8개월된 시츄의 털을 깎아 주었는데 갑자기 날이 추워져 옷을 사러 왔다는 원혜경(43)씨는 "무엇보다 퇴계로 일대의 애견점포들과 달리 내부에 들어가도 악취가 나지 않는 등 청결한 점이 마음에 들어 자주 이쪽으로 나온다" 고 말했다.

이어 그는 " 취급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상품의 품질이 좋고 정성스럽게 강아지를 돌보는 등 비싼 값어치를 한다" 고 덧붙였다.

동물병원이든 페트숍이든 이곳 점포들은 애완견을 장기간 보호해주는 일명 페트텔(Pet-tel)로 불리는 애완견 호텔도 운영한다.

하루에 보통 1만~1만5천원을 받지만 머무는 기간 동안 식사와 예방검진은 물론 털깎기와 목욕.운동까지 책임진다.

로데오 거리에서 애완견과 관련해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애완견 카페인 '이글루' . 자신의 애완견은 물론 이곳 실내에 풀어 놓은 다른 개들과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곳이다.

메뉴판에는 개 주인이 먹을 음식과 함께 개를 위한 메뉴도 적혀 있다.

사람들이 먹는 스파게티와 돈까스는 각각 9천원과 1만원. 애완견에게 먹일 음식 중에는 비싼 것은 5천원짜리(닭고기 안심구이)도 있다.

또 계란프라이.생과일주스 같은 애견식(愛犬食)스낵과 음료는 2천~3천원을 받는다.

또 동물상담소와 미용실도 카페 안에 함께 있어 자신의 애견의 건강상담을 받을 수 있고 아름다움을 가꾸는 동안 개 주인은 커피와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이곳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개를 좋아하는 어린이를 가진 가정으로 주말엔 이들로 자리 차지하기도 어려울 정도. 또 평일에는 실내에 풀어 논 애견과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연인들도 많다.

이글루 김은진사장은 "애견을 기르는 가정이 많아졌음에도 아직까지 개와 함께 집을 나와 보낼 실내공간이 없는 것이 안타까워 문을 열었다" 며 "의외로 개와 함께 찾는 사람들이 많아 수입면에서도 큰 어려움이 없다" 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로데오 거리의 고급 애견문화에 대해 일반인들의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곳 상인들은 패션.음식과 마찬가지로 로데오 거리의 특성인 유행의 첨단에 서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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