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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장 이 문제] 5·16 도로 확장공사 희귀수목 '행방묘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한라산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제주~서귀포간 5.16도로 부근에서 자생하던 희귀 수목(樹木)들이 도로 확.포장 사업과 이식 잘못으로 아예 자취를 감추거나 고사(枯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도로확장사업 시행자인 건교부 제주개발건설사무소와 공사업체는 이식수종 다수가 사라졌는데도 엉터리 공문서까지 작성하며 은폐를 기도했던 것으로 확인돼 환경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 사업개요=건교부 제주개발건설사무소는 지난 1998년 말부터 오는 2002년말을 기한으로 국도 11호선인 5.16도로 확장사업을 진행중이다.

서귀포시 토평공업단지~수악교까지 7.6㎞구간이 확장구간으로 기존 2차로에서 4차로로 확장하는 4백60억원이 투자되는 사업이다.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을 가로지르는 사업으로 착수됐다가 지난해 3월부터 환경파괴라는 반발에 직면, 그나마 공사구간 10.1㎞ 가운데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2.5㎞구간이 제외됐다.

제주개발건설사무소는 당시 식생파괴 논란을 빚자 훼손이 예상되는 2만1천5백12그루의 수목 가운데 희귀.자생식물의 보호를 위해 6백72그루를 선정, 이식하는 등 식물종의 보호를 약속했었다.

◇ 사라진 이식 수종=지난 9월초 제주개발건설사무소는 이식사업 실태 등을 '이식수종 관리대장' 으로 제시했다.

6백72그루의 수목 가운데 2백96그루가 가이식(假移植)됐고 3백72그루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 이식(正植)됐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4월부터 지난 7월까지 각 일자별 해당수종의 이식일자와 위치가 기록됐다.

4백14그루가 이식된 위치로 기록된 서귀포시 토평동 서귀포산업과학고 앞 가로변 6백여m구간. 하지만 이 자리를 차지한 수목들은 현장확인 결과 대다수가 높이 1~2m의 무궁화.개나리나무 일색이었다.

관리대장에는 4m가 넘는 이식대상 수종 95그루가 심어져 있는 것으로 돼 있었지만 그만한 크기의 나무는 10여 그루에 불과했다.

공사업체와 감리단 관계자는 "가지치기로 키가 줄었다" 는 등 변명으로 일관하다 궁지에 몰리자 뒤늦게 조경업체측이 지난 8월 작성한 각서를 내밀었다.

"35그루가 이식도중 고사(枯死)해 업체로부터 동종 수종을 보상받기로 했다" 며 상당수 수종이 이미 사라졌음을 시인했다.

제주도청 관계공무원과 학계.환경단체 관계자로 최근 구성된 '환경평가감시단' 은 제주개발건설사무소측에 이식대상 모든 수목의 작업 전.후 사진자료등 증거자료를 이달 말까지 제시토록 요구해놓은 상태다.

◇ 부실한 관리=이식된 나무 어디에도 인식표가 부착되지 않았다.수목별 채취현장을 촬영해놓지도 않았다. 제대로 이식한 나무인지 조경업체가 바꿔치기한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게 된 것이다.

이식된 나무 대부분이 1~2m안팎의 개나리.무궁화나무뿐이라는 점이 그런 의혹을 증폭시켰다. 환경단체들이 보호하려했던 자생 희귀식물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심어놨던 것이기 때문이다.

장소도 문제다. 해발 5백~6백m의 고산지대에 살던 나무를 서귀포시내 시가지와 맞닿은 저지대에 이식시킨 것이다. 긴 공사기간 고산식물이 제대로 생장할 것이라고 본 것 자체가 비상식이다.

이식수종을 선정했던 제주대 김문홍(金文洪.식물학)교수는 "그나마 이식되더라도 생육이 가능한 수종을 선정했는데도 주먹구구식으로 채취.관리하는 바람에 다수의 나무가 고사했고 일부는 임의로 폐기처분된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건교부 제주개발건설사무소 관계자는 "공사업체측에 이식된 모든 수종에 자체 인식표를 부착토록 했다" 며 "훼손.고사 문제에 대해선 실태를 파악중이다" 고 말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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