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프런트] 7시간 만에 온 ‘핑크택시’… 이름뿐인 흉악범죄 예방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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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11시 기자는 핑크택시를 타 보기로 했다. 서울시 다산콜센터(120)에 전화를 걸었다. “여성 전용 택시를 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상담원은 “서울시 브랜드콜택시로 문의하라”며 연락처를 알려줬다. ‘브랜드콜택시’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콜택시 서비스다. 고객이 통합번호(02-722-5000)로 전화하면 다섯 곳의 택시회사 중 한 곳과 연결해 준다.

기자는 브랜드콜택시에 핑크택시를 요청했다. 하지만 여성 상담원은 “기다려 달라”고 했다. 잠시 뒤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근처에 배차 가능한 여성 기사의 택시가 없습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답변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이날 오후 2시30분, 이번에는 브랜드콜택시에 가입된 택시회사 중 한 곳으로 직접 전화를 했다. 콜택시 상담원은 “여성 기사가 적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는 “여성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그러면 회사 사무실에 별도로 문의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어 “여성 기사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해서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성 택시기사인 김모(59)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낸 것은 1시간여가 지난 뒤였다. 하지만 김씨는 택시를 기다리는 기자가 있는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차로 한 시간여 걸리는 곳에서 다른 승객을 태우고 있었다. 기자가 핑크택시를 만난 것은 이날 오후 6시. 7시간 만이었다. 대통령상을 받을 정도의 인기 정책이었던 핑크택시의 실상은 ‘아이디어’만 있고 시스템은 없는 모습이었다. 현재 서울시 브랜드콜택시로 등록된 2만9000여 대 중 여성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는 259대다. 1%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해외에서는 여성 전용 택시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3년 전 런던과 모스크바에서 핑크택시가 처음 도입됐고, 최근 멕시코에서는 GPS 시스템과 비상 버튼을 설치한 여성 전용 택시도 등장했다. 영국의 핑크 레이디 택시는 엄마를 대신해 자녀의 등·하교를 돕는 서비스도 개발했다. 문화연대 이프 대표 엄을순(54·여)씨는 “정부와 지자체가 여성을 위한 실용적인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실효성이 있는 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김진경·박정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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