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엔 클럽, 한 손엔 스마트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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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호 16면

티타임까지는 이제 10분. 그런데 어디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골프장 가는 길은 오리무중이다. 시곗바늘의 재깍재깍 소리에 맞춰 내 마음은 타 들어가는 중이다.
‘아니, 구력이 몇 년인데 아직도 골프장을 못 찾다니…’.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95>

자책을 하면서 ‘골프장 가는 길’을 들여다봐도 이 길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더구나 간밤에 과음한 탓인지 속까지 울렁거리는 판이다. 큰 집인지 작은 집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화장실 생각도 간절하다. 머릿속의 중앙처리장치(CPU)가 분주히 돌아간다.

‘화장실부터 해결해야 하나, 아니지 티타임이 다 됐잖아. 화장실에 들렀다간 늦을 판인걸. 일단 길만 제대로 찾으면 10분 만에 골프장에 도착할 것 같으니 조금만 더 참아 볼까. 그런데 정말 급하구먼. 속은 또 왜 이렇게 울렁거리는 거야’.

머릿속의 CPU는 멀티태스킹 끝에 과열된 느낌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를 벌써 10분째. CPU는 어떤 행동을 먼저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이란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일 게다. 수년 전 골프장을 찾아 헤매던 필자의 에피소드다. 주말 골퍼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 한 번쯤은 해 보지 않았을까. 그런데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이런 경우도 곧 사라질 듯싶다. 일단 주말 골퍼들의 애장품 1호인 지도책 ‘골프장 가는 길’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너도나도 업데이트된 ‘골프장 가는 길’을 찾았지만 요즘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차량 위성항법장치(GPS)가 널리 보급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더구나 최근엔 아예 GPS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가 쏟아지면서 ‘골프장 가는 길’은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휴대전화를 켠 뒤 버튼만 누르면(화면만 문지르면) 골프장 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손쉽게 골프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IT의 발달로 주말 골퍼의 풍속도가 바뀌는 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 급속도로 보급되고 있는 스마트폰은 아마추어 골퍼들의 습관을 아예 통째로 바꿔 놓을 판이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골프장을 찾아가는 건 기본, 그런데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페어웨이에서 홀까지 거리도 간단히 측정할 수 있다. 코스맵 기능을 하는 애플리케이션만 해도 5~6개나 된단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잘만 하면 캐디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힘들이지 않고 골프를 즐길 수 있을 듯싶다.

휴대전화로 스윙 동작을 촬영해 전송하면 레슨 프로가 친절하게 샷을 교정해 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있다. 휴대전화를 그린 위에 놓으면 그린의 기울기와 브레이크를 알려 주는 프로그램도 주말 골퍼들의 관심을 끈다. 예를 들면 ‘내리막 경사 5.6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브레이크 8.4도’ 하는 식이다. IT가 발전하면서 앞으로 스마트폰에 장착될 골프 관련 애플리케이션은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데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개운치 못하다. 각종 첨단 기능으로 무장한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정말 타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까. 글쎄, 티타임에 늦을까 봐 마음을 졸이긴 했어도 ‘골프장 가는 길’을 들여다보며 길을 찾던 시절이 그립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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