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약 글리벡 값 인하 못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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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고가의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가격 인하가 결국 취소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김종필)는 한국노바티스가 ‘글리벡’ 약가 인하 고시를 취소해 달라며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1차 처방약인 글리벡은 2차 처방약제인 스프라이셀과 대상·효능이 다르다”며 “관세 인하를 이유로 특정 약제에 대한 상한 금액을 내리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고 자유무역협정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해외에서 시판되는 글리벡 400㎎의 평균가격은 글리벡 100㎎의 약 3.95배에 달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한국노바티스가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가입자 173명은 2008년 글리벡이 지나치게 비싸다며 복지부에 약가 인하 신청을 냈다. 지난해 9월 복지부는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글리벡 100㎎의 약값을 2만3044원에서 1만9818원으로 14% 내리는 고시를 발표했다.

이현택 기자



다국적 제약사 신약 값 낮추기 힘들어질 듯

뉴스분석  글리벡은 다국적 제약사 제품의 고가 정책에 대한 비판의 표적이 돼 왔다. 2001년 국내에 첫선을 보일 때 가격을 두고 환자·시민단체와 제약회사 간에 1년 반가량 줄다리기가 벌어진 끝에 제약사가 판정승했다. 한국노바티스가 요구한 2만5000원에 가깝게 가격이 결정돼 지금까지 유지돼 왔다. 당시 선진국에 맞춰 가격을 결정하는 규정에 따라 그렇게 결정됐다. 그 이후에도 환자와 시민단체는 “기업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이라고 주장했고, 제약사는 “연구개발비와 다른 나라 시판가격을 비교하면 높지 않다”고 맞섰다.

2008년 들어 2라운드가 시작됐다. 정부가 시민단체의 요구를 수용해 약제급여조정위원회를 통해 그해 6월 14%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시민단체 요구에 따라 인하하는 첫 사례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제약사의 승리였다. 2003년 2만3045원으로 정한 절차에 하자가 없고 그 이후에도 가격을 인하할 이유가 없다고 재판부가 판정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소송에서 승소에 자신이 없었다. 글리벡의 시판가격이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 7개국 평균가격보다 높지 않아 깎을 근거가 없었고, 2012년에 글리벡을 비롯한 항암제 가격을 재평가하기로 돼 있어 미리 가격을 내릴 명분이 약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과 관련,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대표는 “다국적 제약사의 신약 가격을 낮추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약사와 건강보험공단이 가격을 협상해서 결정하는데 여기서 결렬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뜻이다. 보건복지부는 다음 주중 항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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