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수교 잰걸음 예고] 북-미합의 일본도 놀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일본 정부는 북.미 관계의 급진전에 적잖게 놀란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방송을 통해 발표된 공동성명이 당초 예상했던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집권 자민당 실력자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간사장은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방북이 포함된 스케줄이 (공동성명에)든 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 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일단 이번 합의내용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최대 외교현안의 하나인 북.일관계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세웠다.

북.일수교 교섭은 7년반만인 지난 4월 제9차 대사급 회담이 재개된 이래 이달 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제11차 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9차, 10차 교섭에서 양측의 기본입장이 정리된 만큼 11차 교섭에서는 최대 쟁점인 일본의 과거청산과 북한의 일본인 납치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절충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돼 왔다.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관방장관은 일단 "북.미간 합의가 북.일 수교협상에 플러스 효과를 줄 것" 이라고 말했다.

북한 전문가들도 이번 합의가 북.일 교섭의 속도를 높여줄 것으로 내다본다. 북한이 미국과 안전보장체제를 굳힌 다음 경제지원을 받기 위해 일본과의 수교에 팔을 걷어붙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고하리 스스무(小針進)시즈오카(靜岡)현립대 교수는 "북한의 안보문제가 해결되면 '재팬 머니' 는 더 큰 매력을 지니게 될 것" 이라고 말한다.

일본 정계에선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를 비롯한 대화론자들의 입지가 강화될 전망이다.

모리는 한국계 미 언론인을 통해 북.일 정상회담을 타진하는 등 관계개선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왔고, 대표적 대북 파이프인 노나카 간사장도 마찬가지였다.

북.미관계의 급진전은 납치문제에 대한 정치적 결단 가능성을 크게 할 수 있다. 대북 관계에서 일본만 뒤처진다는 논리가 대북 신중론을 누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가 '닉슨 쇼크' 에서 비롯됐고, 당시 정부 수뇌가 자민당 내 다수인 대만 지지파의 반대를 꺾은 상황이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은 북.미관계 진전에 따라 수교교섭을 위해 북한을 국가로 승인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일본 내엔 이번 북.미 합의에 대한 불만도 있다.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지가 다뤄졌을 뿐 일본의 직접적인 위협대상인 중거리 노동미사일 문제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달 말 11차 북.일교섭은 향후 양측 관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