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오범진의 아이티 구호 현장 ① 패혈증 증상 노인 양발엔 파리떼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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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지역 병원 로비에서 오범진 교수(오른쪽)가 여덟 살 된 여자 어린이의 무릎 부위를 수술하고 있다. [해외긴급구호대 제공]

중앙일보는 아이티 대지진 참사 현장에서 국제보건의료재단의 해외긴급구호대 일원으로 활동 중인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의 오범진(41) 교수를 현지 명예기자로 위촉했습니다. 오 교수는 15일 인천공항을 출발, 아이티 현장에 17일 도착했습니다. 의료인의 눈으로 본 지진 참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지금은 아이티 현지시간으로 20일 오후 11시, 한국시간으로는 21일 오후 1시쯤이다. 대지진 참사 현장인 수도 포르토프랭스 도심에 있는, 아이티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지역병원 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료를 하고 돌아왔다. 숙소는 포르토프랭스에서 서쪽으로 22㎞쯤 떨어진 시티 솔레이 지역의 ‘데코’라는 한국 기업이 건설 중인 발전소 부지에 있다. 몸은 무겁지만 오늘도 병원에서 마주친 환자들의 얼굴이 떠올라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응급의학이 전공이지만 해외 긴급 구호활동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 끔찍한 상태의 환자들을 한꺼번에 마주하는 것은 충격이었다.

오늘 치료한 여덟 살 난 여자 아이도 그랬다. 지진으로 튕겨져 나간 벽돌에 머리와 무릎을 다친 뒤 병원에 들어와 있는 아이였다. 왼쪽 이마의 피부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 두개골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찢겨나간 왼쪽 무릎은 사고 직후 응급조치를 받은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각종 이물질이 들어간 상태에서 대충 꿰매놓아 오히려 감염으로 상처 부위가 녹아 내리고 있었다. 진료실은 꽉 차 있어 병원 1층 로비에 그대로 눕힌 채 피부를 잇고 상처를 꿰매고 드레싱을 해야 했다. 두 시간 가까운 시술이 끝난 뒤 깨끗하게 정리된 상처를 보고 아이가 얼마나 해맑게 웃던지…. 그래도 그 아이는 행복한 편이다. 가족이 살아있으니.

현지에 도착한 다음 날 만났던 60대 남성은 간신히 빠져나온 건물 더미를 바라보며 혼자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날은 119구조대와 함께 포르토프랭스에서 가장 지진 피해가 심했던 지역을 돌면서 붕괴된 건물의 정리작업에 앞서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그 남성은 따뜻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추운 듯 몸을 떨면서 앞의 건물 더미만 쳐다보며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신지 않은 양 발엔 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파리떼가 달라붙어 접근조차 힘들었다. 겉으로 드러난 출혈이나 큰 상처는 없었지만 하지가 부어 있는 것 등을 고려해볼 때 패혈증이 의심됐다. 감염 부위를 도려내고 항생제를 투여하는 등의 치료가 절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수중엔 수액과 지혈제 등 응급환자를 위한 간단한 약품과 장비밖에 없었다. 우리도 외국 구호대의 차량을 빌려 타고 이동 중이었기에 가까운 구호소에 옮겨줄 수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니 그 남성은 바로 앞 건물에서 탈출한 유일한 생존자로, 가족은 모두 희생된 것 같다고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아무도 그를 구호소로 옮겨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를 현장에 남겨두고 철수해야 했다. 환자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마음이 아렸다.

오범진 중앙일보 명예기자

◆오범진 교수=1995년 연세대 원주의대를 졸업하고 2003년부터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응급의학과 중환자 의학 전문의다. 지난해 국제보건의료재단에서 처음 실시한 긴급구호활동 연수교육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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