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늑장 대응이 부른 리모델링 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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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불안하네요. 오늘 건축심의를 받는데 혹시 문제 삼진 않겠죠?” 지난 20일 국내 대형 건설사인 H건설 김모 부장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리모델링 아파트에 대한 건축심의를 받기 위해 구청으로 향하면서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최근 법제처에서 나온 리모델링 증축에 대한 법령 해석 때문이다. 법제처는 계단·지하주차장 등 공용면적과 발코니 등 서비스면적을 포함해 리모델링의 전체 증축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했는데 자신들이 준비한 계획안은 그것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이 회사가 내놓은 사업계획은 결국 반려됐다.

아파트 리모델링을 할 때 공용면적과 서비스면적을 모두 포함해야 하는 것이 법리에 맞는다는 법제처 법령 해석의 충격파는 컸다. 법령 해석대로는 낡은 집의 크기를 키우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려는 리모델링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리모델링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수원시 D아파트 리모델링 추진위원장은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조합설립까지 받고 행위허가를 준비 중인데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이 아파트의 경우 리모델링을 하지 말고 재건축을 하자는 ‘반대파’가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리모델링 사업이 중단 위기로 몰린 데는 정부 책임이 크다. 주택법 시행령에 리모델링 증축 범위가 주거전용면적의 30% 이하로 명시된 2005년부터 주무 부서인 국토부 내에서 이견과 논란이 있었다. 주택토지실 산하 주택건설공급과와 국토정책국 밑의 건축기획과·도시정책과가 리모델링 증축 범위, 용적률 한도 등을 두고 이견을 보여온 것이다. 주택 관련 부서는 전용면적만 30%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고 다른 부서는 증축 총량을 전용면적의 30% 이하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록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다 결국 법제처에 법령 해석을 맡겼고 이번 혼란의 법령 해석이 나오게 된 것이다.

21일 중앙일보가 ‘아파트 리모델링 중단 위기’를 보도한 이후 국토부가 “진행 중인 리모델링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관련 법령을 상반기에 개정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리모델링을 원하는 아파트가 수도권에만 5만5000가구나 된다. 정부는 하루 빨리 법령을 바꿔 리모델링 시장의 혼란을 없애야 한다. 그렇잖아도 이명박 정부가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재건축이 강조되면서 리모델링을 등한시한다는 느낌도 많다. 정부는 뒷전으로 밀쳐놓은 리모델링에도 관심을 가질 때다.

박일한 조인스랜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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