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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늦둥이' 유고 앞날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유고사태를 지켜보면서 과거 동유럽 민주화를 떠올린다.

1980년 8월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시작된 민주화 불길은 89년 12월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 부부의 총살로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 국경에 이르러서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나 마침내 유고에서도 민주화의 함성이 들리고 있다. 베오그라드 공화국 광장을 메운 군중은 89년 가을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에서 봤던 그 인파요, 의사당을 점거한 시위대가 발코니에서 국기를 흔드는 장면은 부쿠레슈티에서 봤던 그대로다. 독재에 시달려온 민중이 봉기해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민중혁명의 고전적 형태다.

유고 공산정권이 그동안 무사했던 것은 상황을 잘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민족주의자로 재빨리 변신했다.

유고연방의 중심국가인 세르비아의 공산당수였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 코소보 자치주에서 소수인 세르비아계 주민과 다수인 알바니아계 주민이 충돌하자 알바니아계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밀로셰비치는 일약 세르비아 민족영웅으로 떠올랐다.

여기엔 세르비아인들의 민족성이 크게 작용했다. 19세기말 오스만 투르크의 오랜 압제에서 벗어난 세르비아는 20세기 들어서 나치 독일의 침략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티토의 공산정권도 유고연방을 유지하기 위해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탄압했다.

이같은 역경 속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는 전투적으로 돼 갔다. 동유럽 민주화 과정에서도 세르비아는 다른 나라와 달리 민주주의보다 민족주의를 택했다.

그러나 밀로셰비치 통치하에서 세르비아인들이 얻은 것은 재앙뿐이다. 6개 공화국.2개 자치주로 구성된 대국이었던 유고연방은 2개 공화국의 미니연방으로 축소됐으며, 그중 하나인 몬테네그로마저 떠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세 차례나 전쟁을 치러 20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타민족에 대한 '인종청소' 로 국제사회에서 야만국가 취급을 받아왔다.

인종청소에 대한 국제사회의 응징인 경제제재로 유고 경제는 파탄상태다. 특히 지난해 3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공습으로 국가 기간시설은 괴멸적 피해를 보았다.

이 와중에도 밀로셰비치와 그 측근들은 부정.부패로 사복(私腹)을 채웠다. 밀로셰비치 일당은 대통령선거 결과마저 조작하려다 거센 국민적 저항을 받고 몰락한 것이다.

신임 대통령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는 청렴강직한 인물이다. 국제사회는 새 유고정부를 승인하고, 경제제재도 곧 해제할 전망이다.

그러나 코슈투니차가 밀로셰비치에 비해 온건하고 상식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리버럴한 인물은 아니다.

특히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신봉하는 데선 밀로셰비치에 뒤지지 않는다.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반감이 강하며, 몬테네그로 분리.독립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치적 리더십도 문제다. 대통령선거에서 코슈투니차를 지지한 야당연합은 18개 정당이 뭉친 것이다.

코슈투니차에게 이들을 한데 묶어놓을 정치적 카리스마가 있을지 의문이다. 또 밀로셰비치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지만 정치적 기반마저 완전 몰락한 것은 아니다. 극우 민족주의세력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으며, 복귀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유고는 밀로셰비치의 13년 독재를 타도하고 뒤늦게 민주화의 배에 올랐다. '민주화 지각생' 유고가 앞으로 순탄한 항해를 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정우량 국제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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