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 편향 교과서 논란] "근현대사, 다시 국정교과서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금성출판사의 '고교 한국 근현대사' 검정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 '이념 논쟁'의 복사판이다. 이 같은 논쟁이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사사건건 반복될 수 있음을 학계에선 우려하고 있다.

연세대 김호기(44.사회학)교수는 "한국 현대사를 놓고 지난 6월부터 제기돼 온 국가 정체성 논란의 연장선에 있는 문제"라며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정당하지만 이를 일방적 비난이 난무하는 정쟁으로 몰고가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사는 오늘의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산업화-민주화 과정의 공과를 북한도 포함시켜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는 공론의 장을 정치권이 아닌 학계와 시민사회가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금성출판사 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과연 친북.반미적으로 기술돼 있는가. 역사적 사실은 하나인데 이를 해석하는 시각은 보수-진보로 나뉘어 팽팽하다. 대개 세대별로 차이를 보인다.

이성무(67)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30, 40대 소장 역사학자 가운데 어느 누구를 시켜 교과서를 쓰라고 해도 좌파적 해석이 들어간 서술이 될 것"이라며 "그것이 이 시대의 세태이자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예컨대 제주 4.3사태의 참여자를 영웅시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뭘 더 얘기하겠나"라고 반문하면서 "불편부당하고 균형감 있게 역사를 쓰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역사학 제1의 경구건만 과거엔 오른쪽으로만 가서 문제였는데 지금은 왼쪽으로만 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대한교과서주식회사에서 펴낸 근현대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동국대 한철호(45.역사교육과)교수는 "내가 쓴 교과서와 경쟁관계에 있긴 하지만 금성출판사 판을 친북.반미적이라고 보는 시각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금성출판사 판이 학계의 논의가 아직 진행 중인 해석을 일부 포함한 것을 문제로 지적할 순 있다. 그러나 비판적 시각에서 조명했다고 해서 '비판은 곧 친북'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런 논란 자체가 2년 전에 그대로 벌어졌다. 그때는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항일 무장투쟁으로 알려진 1937년의 보천보 전투가 실린 것이 문제가 됐었다.

당시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참여했다 곤욕을 치른 한 한국사 교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강조하려면 사사건건 해석이 대립하는 근현대사 부분을 다시 국정교과서 체제로 되돌려야 하고, 대신 삼국시대나 조선시대의 경우는 검정체제로 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교과서를 '성경(聖經)'처럼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는 검정제도가 뿌리내리긴 힘든 것 같다"고 했다.

현행 7차 교육과정에서 고교 2학년부터 가르치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검정체제로 발행돼 모두 6종이 판매되고 있다. 근현대사 이전의 고대사와 중세사는 국정체제다. 근현대사 6종 가운데 금성출판사 판이 판매량의 거의 절반을 점유한 상태. 그 이유에 대해 역사학계에선 '구성이 치밀하고 교육 현장에서 가르치기 쉽게 서술돼 있기 때문에 시장 논리에 따라 현직 교사들에 의해 선택된 결과'로 보고 있다.

배영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