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 노벨상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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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청와대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확인하고 설레는 가슴으로 오는 13일의 공식발표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한국도 마침내 노벨상의 대열에 든다는 의미에서,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서, 그리고 노벨상을 둘러싼 국내의 민망스러운 설왕설래를 잠재운다는 점에서 참으로 잘 된 일이다.

金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는다고 말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노르웨이 최대의 신문 아프텐포스트는 노벨평화상위원회가 올해는 한반도 평화노력에 상을 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온당한 추측(fair guess)' 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오슬로의 한 중견기자는 동티모르와 북아일랜드, 중동의 평화협상에 노벨평화상이 수여된 데서 보듯이 노벨평화상위원회는 평화노력의 결실보다는 진행 중인 평화노력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수상자를 결정하는 경향이라고 설명해왔다.

金대통령에게 유리한 변화다.

문제는 김정일(金正日)위원장이다. 분쟁의 해결에 상을 주는 경우 분쟁의 쌍방 대표가 공동수상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불량국가' 의 명단에 올라 있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노벨평화상을 받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전례가 있다. 1971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동방정책으로 노벨평화상을 단독으로 받았다. 오슬로의 기자는 이 점에 대해 노벨평화상위원회는 분쟁의 쌍방에 균형을 맞추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해의 경우 金대통령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것은 유력한 경쟁자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지미 카터 전 대통령, 구세군, 유엔기구가 후보에 들어 있고, 클린턴이 중동평화를 주선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됐지만 중동평화협상은 결렬되고 결정적인 시기에 팔레스타인에서 무력충돌이 재발해 클린턴의 노벨상 꿈은 날아간 것 같다.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는 것은 金대통령 개인의 경사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국가적인 영광이요, 남북화해와 한반도평화를 위해서도 두손을 들어 환영할 사건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냉소하고 마음 속으로는 金대통령에게 그런 큰 상이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金대통령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가슴아픈 일이다.

여당대표가 "개판" 이라고 개탄한 정치와 지역갈등이 한국인들의 정서를 이렇게 옹졸하게 만들어버렸다. 노벨상이 뭐길래 그것까지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끼어드는가.

이 나라의 전통적인 엘리트들, 영남지역의 DJ 거부세력들, 달콤한 기득권의 둥지에 안주하는 정통관료들은 호남 출신의 머리좋은 정치인이 대통령이 된 것도 배가 아픈데 노벨평화상까지 타는 것을 평상심으로 볼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들은 귀를 막고 10월 13일이 빨리 지나가버리기를 바란다.

이런 정서의 상당 부분은 金대통령이 반대세력의 포용과 국민통합에 실패한 결과다. 많은 국민과 야당의 눈에는 지난 6월 이후 거의 매일 집중호우처럼 열리는 남북접촉이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보다는 노벨평화상 수상과 정권재창출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비친다. 국민들은 金대통령이 대북정책 말고 국정에 관심이 있는지 묻는다.

역사상 큰일을 해내는 동인(動因)은 많은 경우 개인의 야심이다. 가까이는 72년 닉슨의 중국 방문과 멀리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시아 원정과 나폴레옹의 유럽 원정이 그렇다.

노벨상이든 정권재창출이든 金대통령의 개인적인 야심이 金위원장의 통큰 결단을 이끌어 냈다. 야심가를 조종하는 이성의 간지(奸智.cunning of reason)를 보는 것 같다.

노벨평화상까지 받으면 金대통령은 모든 것을 얻는다. 金대통령은 이제 남은 것은 정권재창출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정치인의 정권욕은 배고픈 사람의 음식생각같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국민화합을 제물로 정권재창출의 가도를 폭주(暴走)하면 창출되는 것은 정권보다 갈등의 증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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