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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기] 건축론의 완성체 사찰·서원등서 발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2천여년전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건축가가 갖추어야 할 소양으로 세가지를 꼽았다.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 예술적 감수성, 편리함을 설계할 수 있는 인문학적 통찰력, 튼튼함을 계산할 수 있는 공학적 기술이다.

이른바 미(美).용(用).강(强)의 삼위일체설로, 이를 바탕으로 본다면 건축가는 만능인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 건축가 혹은 건축은 '강' 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건물은 그저 튼튼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지배한다. 급격한 산업화에 편승한 건설붐은 그런 믿음을 강요했다.

이제는 점차 '미' 와 '용' 에도 눈을 돌려 외견상의 멋과 내적 기능을 중시한 건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보다 높은 차원의 도시 전체적 미관이나 주변환경과 잘 조응하는 지는 의문이다.

건물 자체의 구조에 힘을 준 이같은 '도구적 건축관' 은 이론의 결핍과 직결됐다. 각 대학의 학과 명칭도 '건축공학과' 로, 공대의 일개 학과에 소속됐다.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이같은 학제는 일본과 일제시대 일본의 그것을 본딴 한국만이 고집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라고 꼬집는다. 공학만 강조하다 보면 건물의 예술성.철학성 등 인문학적 배려가 무시되는 것은 당연하다.

김봉렬의 '집합적 건축론' 은 이런 점에서 눈길을 끈다. 20세기 우리의 현대건축에서 가져보지 못한 독창적 이론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강' 을 기초로 '미' 와 '용' 을 아우르는 건축의 전체성을 역설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건축론의 자연스런 완성체를 그는 서원과 사찰, 한옥 등 우리 전통건축에서 찾는다.

김씨는 "전세계적으로 20세기 건축은 '파괴의 역사' 다" 라고 단언한다. 특히 이 땅의 자연과 기후, 문화를 무시한 서구 건축론의 무비판적이며 일방적인 수용을 겸험한 한국의 경우를 빗대 "사막에 집을 짓는 방식을 우리 땅에다 적용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고 비판한다.

그는 건축은 공학기술이 아니라, 설계와 이론이며 그 이론의 핵심은 역사라고 주장한다. 그의 이런 신념은 기존 공학계 중심 건축학자들과의 부단한 논쟁 속에서 심화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 김씨가 이처럼 독창적 건축론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실격 못지 않게 우리 건축이론사(史)의 일천함도 한몫했다.

우리 건축학계에서 이론이란 말이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다. 김씨를 비롯해 이상해(성균관대).김동욱(경기대).전봉희(서울대) 교수 등이 한국건축역사학회를 중심으로 이론화 작업에 힘쓰고 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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