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빈환자의 천국' 성가복지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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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토요일인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가복지병원 2층 외래 진료실. 여느 병원 같으면 주말이어서 환자가 뜸해야 하지만 과(科)마다 환자들의 발길이 그칠 새 없다. 이날 오후에만 2백여명이 무료 진료를 하는 의료진의 정성스런 치료를 받았다.

이날 진료를 받은 척수종양 환자 朴모(46.경기도 파주시 법원읍)씨는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나 같은 환자들에게 이곳은 '천국' 이나 마찬가지" 라고 말했다.

1년 전 국내 가구공장에 취직해 일을 하다 올 초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 중인 블렛(29.러시아 출신)은 서투른 한국말로 "이 병원이 없었으면 치료비 마련에 고통을 겪었을 것" 이라고 했다. 그는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반복했다.

의료계 파업으로 병원마다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이 잇따르고 있지만 이곳에선 의사들이 환한 얼굴로 환자들을 정중하게 맞아 의료 혼란 속에 모처럼 보기 좋은 병원의 모습이 연출됐다.

이곳은 1990년 가톨릭 수도(修道)단체인 성가소비녀회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극빈 환자들을 무료로 돕고자 문을 연 자선병원. 지하 1층.지상 9층의 1백 병상 규모다.

지난 10년간 거쳐간 환자는 38만명선(외래 13만여명, 입원 25만5천여명). 이곳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도 1천명이 넘는다.

자원봉사와 후원회가 이 병원을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매달 3천여개 후원계좌로 7천여만원이 입금된다. 또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과 주방.청소.목욕.이발.세탁 등을 담당하는 자원봉사자들이 8백여명이나 된다.

이곳을 찾는 환자들은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가고 돌봐줄 가족이 없는 행려자들과 극빈자.알콜중독자들이 대부분이다. 소외되고 버림받은 처지여서 이 병원이 없었다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었던 이들이다.

평일 상근 의사는 내과.외과 전문의 2명이지만 토요일마다 치과.정형외과.신경외과.피부과.비뇨기과 등 외부 병원 의사 38명이 무료 진료봉사를 위해 이곳을 찾는다.

10년간 토요일 무료 진료에 참가해온 신원한(51.순천향병원 신경외과)씨는 "내가 가진 조그마한 지식을 나누는 것일 뿐" 이라며 "남들로부터 칭찬받을 일이 아니며 오히려 어려운 처지의 환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고 말했다.

2개월째 간호실습을 하고 있는 김세미(金世美.19.서울간호학원)양은 "간호사로서 봉사.헌신의 자세를 배우고 있다" 고 밝혔다.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전임의로 일하는 羅모(34)씨는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주변 조건이 좋아서 의사가 됐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같은 봉사의 기회를 갖게 돼 너무 기쁘다" 고 했다.

병원장 홍비앙카 수녀는 "의료계 파업 중에도 봉사를 외면하지 않는 의사들이 너무나 고맙다" 고 말했다. (성가복지병원 02-940-1500~2)

하재식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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