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결장 제거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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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결장(結腸)은 사람의 대장(큰창자) 중 맹장과 직장 사이 부분이다. 작은 창자에서 소화된 음식물에서 수분을 흡수하는 구실을 한다.

길이는 약 1.37m. 20세기 초 서양 의료계에서는 결장을 잘라내는 수술이 유행했다.

많은 의사들은 곧 배설될 쓸모없는 노폐물들이 잔뜩 들어있는 결장을 제거하면 몸 전체가 정화되고 각종 질병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면역학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생리학자 일리야 메치니코프도 같은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결장 속의 대변이 혈관으로 역류해 체내의 다른 기관들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이른바 '자체 중독론' 으로 발전했다. 잘못된 믿음과 그즈음 급속히 발달한 마취술.소독술.외과수술 기법은 의사들로 하여금 즐거움과 뿌듯한 보람을 동시에 느끼면서 무수한 결장을 잘라내게 했다. 건강한 사람의 자체중독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추리작가 코넌 도일이 창조한 명탐정 셜록 홈즈의 실제 모델은 20세기 초 영국의 저명한 외과의사 윌리엄 레인이라고 한다.

뛰어난 관찰력과 독특한 개성을 지녔던 레인도 숙련된 기술을 자랑하며 1천회 이상의 결장제거 수술을 집도했다. 위궤양 환자도, 편도선 수술이 필요한 환자도 결장을 제거당했다. 심지어 아내의 우울증과 바가지를 없애려고 결장제거 수술을 의뢰한 남편도 있었다.

미국의 문화평론가 찰스 패너티는 저서 '문화라는 이름의 야만' 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확실히 결장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뭔가 달라졌다. 대부분 장에 불쾌감을 느끼며 일생을 보냈다. 어떤 사람은 감염이 되어 죽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수술로 영원히 불구가 됐다. '

그러나 결장수술 광풍(狂風)의 배경에는 의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거의 절대적인 믿음이 깔려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의사의 전문지식과 기술은 한 사회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린다.

옳든 그르든 일반인으로서는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의심하는 것조차 불경(不敬)에 해당한다. 당연히 독보적인 위치에 걸맞은 책임감과 신중함이 의사에게는 필수다.

그러나 "서울경찰청장이 직접 와서 사과하라" "정부의 사과회견문은 사전에 검증받되 '그러나' 라는 토를 달지 말아라" 는 우리 의료계의 요구사항들에선 독선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 '편견 제거수술' 같은 것은 없을까.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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