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퇴임후 더 분주한 '간박사' 김정룡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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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ID카드도 반납하고 강단에 설 수도 없지만 환자는 계속 볼 것입니다. 진료는 의사의 영원한 소임이기 때문이죠. "

최근 정년퇴임으로 교단을 떠난 김정룡(金丁龍.65)서울대 의대 교수는 지금까지 돌봐 온 1만5천여명의 환자는 계속 진료하겠다고 밝혔다.

금요일 오후엔 서울대병원 간연구소에서, 화.목요일 오전엔 자신이 고문으로 있는 일산백병원에서 진료한다는 것.

간박사로 널리 알려진 金박사는 B형간염 예방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한국인의 평균수명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의사로 평가받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B형간염 바이러스 감염자가 전 인구의 10%였지만 백신보급으로 현재 4%로 줄었습니다. B형간염 예방백신의 개발은 제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연구지요. "

정년퇴직 후에도 그의 연구는 계속된다. 지난해 C형간염 바이러스의 혈청분리 성공에 이어 C형간염 예방백신마저 개발할 계획이다.

현재는 백신 개발의 전초단계인 바이러스 단백질 구조의 규명에 매달리고 있다.

"진료 외엔 간연구소에 나와 C형간염 연구에 몰두할 생각입니다. 가족들과 여행이라도 가야 하지만 연구 때문에 여의치 않습니다. 집사람에게 늘 미안하지요. "

시간을 아끼느라 40년간 점심을 굶어가며 연구실을 지켜온 그의 일 욕심은 여전하다.

28일엔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집결해 40여명의 교수들과 공동으로 출간한 '소화기계 질환' 의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일반인들을 위한 '간박사가 들려주는 간병(肝病) 이야기' 도 펴낸 바 있다.

매주 금요일 연구결과를 토론한 뒤 대학로 호프집에서 후학들과 갖는 술모임인 금주회(金酒會)에도 계속 참여할 생각이다.

숱한 유명인사들을 직접 치료해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10여년전 간암으로 숨진 평범한 환자라고 한다.

"인천시청 공무원인 이 환자의 남편이 부조금을 모두 모아 간연구소 연구기금으로 출연했습니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그 환자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가 후학에게 들려주는 지론은 한 우물을 파라는 것. "인생의 성공도, 건강을 지키는 비결도 한 우물을 파는 것입니다. 즐겁게 일하는 가운데 성취욕을 얻는 사람에게 병마가 침범할 수 있겠습니까. "

지금도 논문을 쓸 땐 줄담배를 피운다는 그가 들려준 건강비결이다.

글=홍혜걸,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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