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추적] 외고 입시 개편안 발표 후 한 달 요즘 학원가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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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D학원 외고 준비반에서 강사가 예비 중3 학생들에게 국어 인증시험 대비용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내신과 각종 인증시험 준비를 돕는 이 학원에는 한 달 새 수강생이 40%나 늘었다. 이 중에는 정부의 외고 입시 개편안 발표 이후 외고 입시전문학원에서 옮겨온 학생들이 많다. [김도훈 인턴기자]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외고 입시 전문학원인 T어학원. 입구에는 지난해 외고에 1100여 명을 합격시켰다는 내용의 홍보 전단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한 교실을 들여다보자 올해 중3이 되는 학생 10여 명이 텝스(TEPS·영어공인시험) 준비를 위해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의 다른 교실들은 불이 꺼진 채 비어 있어 한산한 느낌이었다. 이 학원은 지난해 12월 중순 예비 중3생 모집에 나섰지만 등록은 예년보다 30%나 줄었다. 외고 입시 전문학원의 수강생은 줄어드는 반면 내신에 도움이 되는 종합반 학원에 학생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학원 관계자는 “매달 800명 정도 등록하는데 이번엔 600명밖에 안 됐다”며 “지난해 말 정부의 외고 입시 변경안 발표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대치동에서만 건물 세 동을 썼는데 수강생이 줄어 최근 한 동을 내놓았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12월 초 교육과학기술부가 2011학년도 외고 입시부터 영어듣기평가와 구술면접을 없애고 영어 내신과 학습계획서를 주로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학원가 풍속도가 변하고 있다.

경기도 분당의 외고 입시 전문 A어학원도 평소 중3 학생이 월평균 1000명가량 등록했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20%나 줄었다. 대치동의 상보어학원은 최근 100여 명을 가르치던 외고 입시반을 아예 없앴다. 수강생들도 혼란을 겪고 있다. 기자가 A어학원의 한 교실에 들어가 “입학사정관제 내용을 아느냐”고 묻자 12명 중 4명만이 “안다”고 답했다. 권모(16)군은 “지난해 외고에 입학한 형조차도 외고 입시에 대해 해줄 말이 없다고 하더라”며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그러나 외고 입시학원의 약세가 사교육 감소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국어·영어·수학 내신 위주로 가르치는 종합반 학원으로 예비 중3 학생들이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교과부는 외고 입시 개편안을 발표할 때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국어·수학 인증시험 성적을 잘 받게 가르친다고 소문난 서울 D학원 외고 대비반에는 지난해 말 75명이 등록했다. 그런데 한 달 사이 30여 명이 추가로 들어왔다. 이 학원 김박현 입시전략연구실장은 “어학원 수강생들이 종합반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예비 중3인 송주원(16)양은 “학업계획서 평가를 잘 받으려면 한자급수가 2급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들었다”며 “한국사나 국어 같은 다른 인증시험도 대비하기 위해 종합반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중2가 되는 자녀를 둔 조은아(43·서울 상암동)씨는 “외고뿐 아니라 자립형 사립고도 내신 비율을 높이는 추세여서 어학원보다 내신 관리를 해주는 종합반에 아이를 보냈다”고 했다.

외고 입시제도가 바뀌자 자립형 사립고(자사고)나 유학 쪽으로 진로를 바꾸는 학생들도 있다. 예비 중3 자녀를 둔 이해라(40·서울 방이동)씨는 “아이가 외고에 들어가길 원했지만 학원에서도 합격 여부를 확신하지 못하더라”며 “자사고 쪽으로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예비 중3 자녀가 있는 김순자(43·서울 강남구)씨는 “아이가 외국 생활을 2년 한 덕에 영어를 잘해 외고를 노렸는데 내신 중시로 입시가 바뀌어 다시 유학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이병민(영어교육과) 교수는 “외고 입시 개편안에 대한 마땅한 대비책을 찾지 못한 학생들이 어학원을 떠나 과외나 종합반으로 다시 몰리는 풍선효과가 지속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상 기자 ,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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