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새 화두 '안티 운동'] 건전한 비판은 아름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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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지난 17일 밤 홍익대 앞 라이브 클럽 '피드백' . 귀청을 찢는 듯한 사운드에 맞춰 젊은이들이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일부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모임인 '문화사기단' 이 주관한 공연 '서태지를 위하여' . 제목과는 달리 이 공연은 서태지의 컴백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반(反)서태지, 즉 안티(anti)서태지를 주창하는 공연이었다.

저녁 7시부터 네 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공연을 지켜본 젊은이는 2백여명. 서태지에 열광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반대편에는 안티 서태지에 동조하는 이들도 있음을 보여줬다.

공연 소식에 서태지 팬들은 격렬히 반발했다. 이들은 인터넷 팬클럽 게시판을 통해 "함량 미달의 언더 밴드들이 서태지를 유린해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려 한다" 고 비난하는 등 거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반면 안티 서태지 사이트에는 '서태지의 지나친 신비화 전략' 등을 비난하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H.O.T.SES 등 히트 댄스 그룹을 키워낸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신인 여가수 보아. 만 13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완숙한 춤솜씨와 외모가 화제를 낳고 있지만 "어린 소녀를 철저히 상업적으로 이용한다" 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섬뜩한 화면의 안티 보아 사이트들에는 기획사와 보아를 '증오한다' 는 글도 있다. H.O.T와 SES 역시 지지와 비난의 공방이 치열한 안티 사이트가 여러 개다.

대중문화계에 '안티' 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서태지.조성모 등 톱스타들의 경우 예외없이 안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다수의 안티 사이트가 개설되는 것은 물론이고 안티 서태지 공연에서 보여지듯 오프라인에서의 움직임도 활발해지는 경향이다.

안티 운동의 대상은 인기 정상의 스타들. 열성적인 팬들을 다수 확보한 만큼 상대적으로 비난의 목소리도 크다.

이제 안티 운동이 없는 연예인은 톱스타라고 말하기 쑥스러울 정도다.

서태지의 경우 미국 음악 도입, 신비화 전략 등이 비난을 받고 있으며, H.O.T 등은 표절 의혹과 립싱크 등이, 조성모는 지나친 이미지 포장 등이 안티 운동의 이유가 되고 있다.

문제는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안티 운동에는 정제된 토론과 입장 제시도 있지만 이유없는 욕설과 악의에 찬 근거 없는 소문도 난무한다는 점이다.

안티 운동의 당사자들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SM 관계자는 "건전한 비판은 수렴하지만 정도가 심한 경우엔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는 수준에서 말을 아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안티 운동은 기업과 정치인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삼성.현대.SK 등 안티 사이트가 없는 대기업이 드물 정도며, 최근엔 일부 정치인들에 대한 안티 사이트에도 네티즌들이 몰리고 있다.

인터넷 패러디 신문들은 풍자의 형식을 빌어 특정 집단이나 정치인을 조롱하면서 이들에 대한 사실상의 안티 운동을 벌이고 있고, 일부 독립 잡지들 역시 특정 집단이나 문화 권력에 대한 반대 운동을 집요하게 펼쳐 문화계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이용과 탈권위적인 사회 분위기가 확산된 게 스타나 권위주의적 권력.집단에 대한 안티 운동이 활성화된 주된 이유" 라며 "앞으로 안티 운동이 악의적이고 소모적인 방향으로 전개될지, 정당한 비판과 토론의 장으로 활성화할지는 전적으로 우리 사회의 문화적 역량에 달려있다" 고 분석했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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