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35주년] 인터넷 생존실험 김태호·송선경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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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에 있는 가상공간 연구소. 김태호(30).송선경(26)부부(사진)가 5월 1일부터 4개월 동안 생존실험을 하고 있는 30평의 좁은 공간이다.

벤처기업 라스21의 직원인 이들은 1년6개월 동안 재택근무를 하면서 4천만원을 갖고 오로지 인터넷과 디지털 제품만을 사용해 살아남아야 한다.

아날로그 사용 금지라는 원칙에 따라 유선전화는 아예 없다. 외부와의 접촉은 e-메일과 무료 인터넷폰을 이용하고 디지털 휴대폰도 긴급상황에만 쓰도록 허락된다.

앞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디지털 세계. 한발 앞서 가상공간을 살고 있는 金씨부부의 경험으로는 일단 살만한 세상이다.

가상공간 연구소를 운영하는 라스21측은 "사이버 생존 실험은 일단은 성공적" 이라며 "디지털과 인터넷만으로 생존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 라고 밝혔다.

실제로 金씨가 처음 입주했을 때 컴퓨터만 달랑 놓여 있던 2개의 방에는 온라인으로 구입한 가구와 각종 생필품들이 차곡차곡 늘고 있다. 24시간 4개의 감시 모니터를 통해 들여다본 그들의 하루생활도 별 불편 없이 이뤄지고 있다.

이들의 일상생활은 인터넷 쇼핑으로 유지된다. 金씨는 "식품에서 손톱깎이까지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구매한다" 며 "최근에는 부모님의 생신선물도 인터넷으로 보내드렸다" 고 말했다. 근거리통신망(LAN)을 통해 이뤄지는 재택근무로 인해 개인시간은 훨씬 많아졌다.

金씨 부부는 지난 8월 6일에는 사이버 결혼식도 올렸다. 주례는 대형 디지털TV 화면에 캐릭터로 등장한 백범 김구 선생. 金씨부부는 앞으로 애기도 낳아 평범한 한 가족의 가상공간 적응 가능성을 체험할 생각이다.

처음 입주할 당시에는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던 金씨 부부가 지금은 인터넷 방송과 홈페이지도 운영할 정도로 사이버 세계에 익숙해졌다.

사이버 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金씨부부에 이어 라스21이 내년에 시작할 제2기 사이버 생존 지원자들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아직은 불편한 점도 적지 않다. 金씨 부부는 결혼은 했지만 아직 법적인 부부가 아니다.

金씨는 "인터넷으로 혼인신고를 했는데 면사무소에서 접수를 거부당했다" 고 말했다. 혼인신고는 반드시 당사자들이 직접 신청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또 간단한 금융거래는 인터넷으로 가능하지만 온라인 인감증명이나 전자서명이 아직 법적 효력이 없어 부동산 거래 등은 꿈도 못꾼다. 선거가 닥쳐와도 온라인으로는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

병에 걸렸을 때는 특히 힘들다. 서울대병원과 제휴하고 화상을 통해 검진을 받아도 인터넷에서는 아직 약품을 구입할 수가 없다.

남편 金씨는 "집사람이 임신해 입덧을 할 경우 먹고싶은 과일을 제때 구해줄 수 없을 것 같아 걱정" 이라고 말했다.

부인 宋씨도 최근 홈페이지에 "사이버 세상에는 인스턴트 식품이 판을 치고 있다" 며 "신선한 채소와 싱싱한 생선.어패류를 먹고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는 글을 올렸다.

金씨 부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소외감이다. 金씨는 "화상채팅이나 e-메일로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지만 얼굴을 맞댈 수 없어 너무 아쉽다" 고 밝혔다.

술을 좋아하던 그는 부인과 세차례 술을 마셨으나 "흥취가 나지않아 이제 술도 멀어졌다" 고 말했다.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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