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 겨울바다의 검은 영양 덩어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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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호 15면

요즘 김이 제철이다. 김은 10월께 보이기 시작해 겨울에 잘 자란다. 겨울 김은 채취한 뒤 바로 가공한다. 그래서 신선하고 세포가 살아 있다. 김의 맛과 영양은 겨울에 절정을 이룬다.

박태균의 식품이야기

마른 김엔 단백질이 100g당 30∼40g이나 들어 있다. ‘밭에서 나는 쇠고기’로 통하는 콩에 버금간다. 각종 비타민도 넉넉하게 들어 있다. 우리 조상은 푸른 채소가 부족했던 겨울에 김을 비타민 공급원으로 이용했다.

면역력을 높여 주고 눈 건강을 돕는 비타민A가 풍부하다. 김 한 장의 비타민A 함량은 계란 두 개와 맞먹는다. 정월 대보름 절식인 복쌈은 취나물, 배추 잎, 굽지 않은 김 등에 밥을 싼 음식이다. 밥을 큼지막하게 싸 먹으면서 복이 덩굴째 들어올 것을 기원했다. 복쌈은 눈이 밝아지고 명(命)을 길게 한다 하여 명쌈이라고도 부른다. 눈에 좋은 비타민A가 김에 풍부하다는 사실을 옛사람들은 경험적으로 눈치챘다.

유해산소를 없애 노화·암을 예방하는(항산화 비타민) 비타민C도 풍부하다. 100g당 함량이 93㎎으로 내로라하는 과일·채소가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다.

김은 또 칼슘(뼈·치아 건강 유지)·철분(빈혈 예방)·칼륨(혈압 조절) 등 미네랄의 보고다. 특히 칼슘 함량(100g당 325㎎)은 ‘칼슘의 왕’으로 통하는 우유의 세 배 이상이다. 예부터 김은 위(胃)에 이로운 해초로 통했다. 『본초강목』엔 “청해태(김)는 위장의 기(氣)를 강하게 하며 위장이 아래로 처지는 것을 막는다”는 대목이 나온다.

과학적인 근거도 있다. 비타민U라는 항(抗)궤양성 물질이 풍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비타민U라고 하면 흔히 양배추를 떠올리나 김의 비타민U 함량은 양배추의 70배에 달한다. 식이섬유 함량이 높다는 것(말린 김 100g당 37g)도 김의 장점이다. 식이섬유는 음식이 장(腸)에서 머무는 시간을 단축시켜 유해물질·노폐물을 빠르게 몸 밖으로 내보낸다. 또 변비를 예방하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춘다. 포만감을 빨리 느끼게 하고 당·지방의 체내 흡수를 지연시켜 비만·당뇨병의 예방·치료를 돕는 것도 식이섬유의 역할이다.

『동의보감』에선 김을 감태(甘苔)라고 했다. ‘단해초’라는 뜻이다. “김은 맛이 달면서 짜고 성질은 차다. 토사곽란으로 토하고 설사하며 속이 답답한 것을 치료하고 치질을 다스리며 기생충을 없앤다”고 쓰여 있다.

김은 식물 분류상 홍조류에 속한다. ‘바닷가의 바위 옷’ 같다 하여 해의(海衣)·해태(海苔)라고도 불린다. 중국명은 하이타이(海苔)다.

좋은 김은 빛깔이 검고 광택이 난다. 향기가 좋으면서 불에 구우면 청록색으로 변하는 것이 상품이다. 구우면 김에 든 붉은 색소가 청색 물질(피코시안)로 바뀐다. 그러나 김이 물에 젖거나 햇빛에 노출되면 붉은 색소와 청록색으로 변하지 않고 향기도 없어진다. 따라서 마른 김은 습기가 없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국인치고 김 싫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일본·중국인도 선호한다. 반면 서양에선 인기가 없다. 소개도 거의 안 됐다.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김을 식탁에 올린 적이 있는데 전후 전범 재판이 열렸을 때 김을 먹인 사실이 포로에 대한 가혹행위로 인정됐다. 검은 종이를 강제로 먹였다고 본 것이다.

“해태 고장에 딸 시집 보낸 심정”이라는 옛말이 있다. 그만큼 김 양식은 힘든 중노동이다. 맛있고 영양가 많은 김엔 어민들의 숨은 땀과 수고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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