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샛별] ‘페어 러브’찍은 감독 신연식의 뚝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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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자가 사랑으로 흔들리는 순간을 그리고 싶었다”는 신연식 감독. 안성기가 꽃을 들고 여대 앞에서 이하나를 기다리는 장면은, 자신과 부인의 실제 에피소드를 옮긴 것이다. [조용철 기자]

신연식(36) 감독이 주목 받은 것은 첫 장편 ‘좋은 배우’때다. 2005 부산영화제, 2006 로테르담영화제 출품작이다. 러닝타임 175분짜리를 300만원에 찍었다. 밀도 있는 연출력과 유려한 구성이 호평 받았다. 웬만한 역할은, 감독이 직접 했다. 시나리오도 제작비에 맞춰 썼다. 배우나 장소가 섭외되면 거기에 맞춰 장면을 구성하는 식이었다.

신 감독의 두 번째 장편 ‘페어 러브’가 개봉했다. 데뷔작에 비하면 블럭버스터급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중년 남성이 죽은 친구 딸과 서툰 첫사랑에 빠지는 얘기다. 국민배우 안성기와 이하나가 주인공이다. 오직 시나리오에 꽂힌 안성기가 제작비를 구하러 무명의 신인감독을 홍보하고 다녔다. 유력 제작자를 소개시키기도 했다. 순제작비는 1억원. 주연배우들은 노개런티를 자처했다. 후반작업, 프린트비까지 합해도 2억 남짓이다.

그 흔한 레커차·크레인·스태디캠· 달리 하나 못썼다. 살수차 빌릴 형편도 아니라 편집하다가 비오면 달려나가 비 장면을 찍었다. 그래도 영화는 초라함을 벗었다. 감독은 “제작비 때문에 포기한 회심의 장면이 많아 억울하다”지만 섬세한 감성과 음악·영상의 조화가 돋보인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도 초청됐다.

안성기가 첫사랑에 쩔쩔매는 50대 노총각으로 변신한 ‘페어 러브’. [루스 이 소니도스 제공]

“꼬박 4년이 걸렸습니다. 제작사만 4곳을 돌아다녔고 스태프들에게 해산선언도 했지요. 촬영은 지난해 5월 22회 차로 끝냈습니다.” 소재 자체는 관심 있지만 시나리오를 고치라는 주문이 많았다는 얘기다. “여주인공 캐릭터를 바꿔라, 모호한 결말을 분명하게 해라, 여배우 노출을 넣어라 등등이었죠. 하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비빔밥에 고추장을 더 넣을 수는 있어도, 비빔밥을 냉면으로 바꿀 수는 없는 거잖아요.”

결국 영화는 엎어질 위기에 처했다. “스태프들에게 팀 해체를 알린 후 집에 돌아오니 주인이 전세를 빼라는 거예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아예 방을 빼서 전세비 1억으로 영화를 찍었습니다. 제 영화사를 만든 거죠. 촬영시작 2주 전이었습니다.”

안성기와 이하나는 출연을 번복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3년 넘게 이 영화를 기다려 줬습니다. 안성기가 보장한 감독이라는 타이틀 덕에 얼마나 큰 도움을 받았는지 몰라요. 안 선배님은 스태프 회식비로 1000만원은 족히 쓰셨을 겁니다.” 그는 안성기의 연기력에 경의를 표했다. “말 그대로 액팅 머신이세요. 한 장면을 100번 찍으면 매번 똑 같이도, 또 다르게도 할 수 있는, 로렌스 올리비에 같은 배우죠.”

“솔직히 영화가 좀 애매합니다. 완전한 상업영화도, 작가영화도, 영화제용 영화도, 독립영화도 아니지요. ‘해운대’가 A고, 김기덕 감독 영화가 Z라면 D나 F 쯤 있는 영화랄까요. 투자자들은 A 아니면 차라리 Z, 양 극단만을 원해요. 이제는 우리 상업영화도 D나 F쯤을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작품 다양화가 별 것 입니까.”

“한 해 개봉영화의 50%가 신인감독 작품이고, 그 신인의 80%는 자기 영화에 애정이 없는 게 한국영화의 현실”이라고 꼬집는 신 감독. ‘페어 러브’를 잇는, 중년멜로 3부작 중 하나인 ‘안나’를 차기작으로 준비 중이다. 참, ‘페어 러브’는 무슨 뜻? “내가 철저히 마이너스여도 페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 부조리를 안고 사는 게 페어한 것이 사랑”이라고 대답했다.  

양성희 기자 ,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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