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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TV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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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존 케리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토론의 달인이다. 외교관인 아버지와 저녁식사 때마다 토론을 했던 그는 1957년 뉴햄프셔주의 사립기숙학교인 세인트 폴스에 다닐 때 '존 위넌트 소사이어티'라는 토론단체를 만들었다.

예일대에선 '예일 정치동맹'이라는 토론단체의 회장도 맡았다. 당시 대학 2년 후배인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과 인종차별 문제로 잠시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서로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자리였다고 한다.

케리는 96년 4월 8일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린 8차례의 상원후보 TV토론에서도 능력을 과시했다. '타이탄의 혈투'로 불린 토론에서 처음엔 수세였지만 결국 공화당 후보를 따돌리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케리는 언론, 특히 방송의 달인이란 평도 받는다. '보스턴 글로브 기자들이 본 존 F 케리'란 책은 "풋내기 상원의원일 때 케리는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급급했다"며 은근히 뒤집어 비꼰다. 91년 매사추세츠 정가에서 케리는 '생방송'으로 통했다. 늘 카메라기자를 몰고다닌다고 꼬집은 것이다.

토론과 언론 분야에서 부시 대통령은 케리에게 못 미친다. 예일대 시절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월남전 확대 등 사회적 이슈가 있었지만 그는 모르쇠였다. 거기에 '대화 미숙'이 아닌가 싶은 일화도 있다. 주 방위군 시절 부시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합격했다. 부시는 축하주를 마시고 너무 취해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집 현관에서 뒹굴었다. 가뜩이나 맏아들이 못마땅했던 아버지 부시는 "데려오라"고 소리쳤다. 만취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주먹을 흔들며 "오라 그랬다면서요"라며 반항했다. 화가 치민 아버지가 "맨투맨으로 해보겠다는 거냐"라고 고함을 질렀다. 어머니가 뜯어말리는 와중에 예일대 합격 소식이 알려졌다. 그게 부시의 방식이었다. 대통령 때나 그 이전이나 부시가 언론과 밀월관계에 있었다는 얘기는 없다.

그런 양자 성향의 반영이랄까. 1차토론은 여론조사 결과 케리의 오차범위 내 판정승. 그래서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에 반발하고, 북한 혐오감에 불안해 하는 이들은 케리의 선전에 박수를 보낼지 모른다. 그러나 TV토론이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미국 학자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본격 대결은 이제부터라니 두고 볼 일이다.

정치부 안성규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