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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하게 밀렸을 때, 헤쳐 나오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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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저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2년째 하고 있는 여대생 K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곳에서는 처음에는 식기를 닦는 일부터 시작해서, 다음에는 매장에서 주문을 받는 일,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는 계산대에서 근무를 하는 식으로 ‘등업’이 이뤄지기 마련입니다. 통상적으로 식기 닦기를 3개월 정도 하면 후배가 들어오고 매장으로 진출하기 마련인데, 제 경우에는 M이라는 여자 후배에게 앞지르기를 당했고, 식기 닦기만 1년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매장으로 나오긴 했는데, 그 후배가 그 이후 계산대를 장악하고 고참인 것처럼 구는 게 아니겠습니까? 은근히 일을 떠밀기도 하고요. 주변에서 보는 눈들도 있는데,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나고. 언니는 그 아이에게 똑 부러지게 말을 하라고 하는데, 괜히 사이가 나빠질 것 같아서 어쩌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A : 알바생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소한 일쯤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고민을 털어놓는 당사자에게는 이 문제가 무척이나 고민스러운 듯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이 일로 해서 그녀가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했다는 점. 그녀는 앞으로도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도 정상적으로 출발을 했다. 식기 닦기 과업도 칭찬을 받을 정로도 아주 잘 수행했고, 그런데 매장에 나가서 주문을 받으면서 한두 번 실수를 한 것이 화근이었고, 더 큰 비극은 바로 그때 그녀, M이 곁에 있었다는 점이다.

M은 입사 초기부터 완전 빠꿈이였다. 언니가 바로 이 매장에서 알바를 한 경험이 있었던 터라 고참 언니들의 확실한 지지를 받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언니가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준 탓에 일도 막힘이 없이 척척 잘해내었다. 당연히 평가도 좋을 수밖에.

이런 후광과 사전 멘토링에 힙 입어 점장은 물론 매니저를 비롯한 정규직 직원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던 M은 그녀가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에 그녀의 자리를 꿰차고 나가 버렸고, 그녀는 사실상 강등이나 다름없는 원위치 복귀가 이뤄지고 만 것이다.

조금 억울하긴 했지만 자신이 잘못한 부분도 없지 않았던 터라 그녀는 이 결정을 그냥 받아들였다.(삐익! 이 부분에서 첫 번째 경고!) 도로 식기 닦기 보직으로 돌아온 그녀는 묵묵히 맡은 일을 수행했다. 이 일에 대한 평가는 역쉬~ ‘참 잘했어요!’였고, ‘아주 잘 한다’는 칭찬을 들으며 급기야 말뚝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매장으로 나가 주문받는 업무로 등업이 이뤄지길 고대하던 그녀. 마침내 밑으로 후배들이 한참 밀고 들어오고 난 이후에 비로소 매장 근무 명령이 떨어졌고, 드디어 대망의 매장 근무에 돌입하게 되었는데. 어라? 공교롭게도 M과 함께 매장 관리 업무도 담당하게 된 것!

이제야 M과 동급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후배들 보기에 쪽 팔리지 않게 되었다는 생각에 안도하게 된 그녀. 샐러드 바도 잽싸게 채워 넣고, 후배들 데리고 매장 청소도 열심히 했는데, 이런! M이 완전 고참처럼 구는 게 아닌가? 처음엔 그냥 넘어 갔다. 그런데 은근히 업무를 지시하는가 하면, 자신이 해야 할 일까지 시키면서, 아랫사람 부리듯 하는 데에는 열이 받을 수밖에.

후배들 보는 눈도 있고, 쌓인 것도 많고, 확 엎어버리고 싶긴 한데, 조심한 성격 탓에 그러지도 못하고 속으로 스트레스만 쌓여가던 차에, 언니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조언이랍시고 하는 말. ‘걔 불러놓고 따끔하게 따져’ 친구들의 해법은? ‘네가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겠다. 얘~’(삐익! 이 부분에서 두 번째 경고!)

‘언니야 성격이 외향적이니까 그런 말 하는 게 어렵지 않겠지!’ ‘야~ 니들, 나 이제까지 한 번도 꾀부리지 않고 거북이처럼 일만 했거든!’ 이런 말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 말도 못했다는 그녀. 주변의 처방도 답이 아니라는 생각에 결국 그냥 접을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삐익! 이 부분에서 세 번째 경고!)

결국 M으로 말미암은 스트레스에, 말 한 마디 못하는 것에 따른 스트레스가 더해진 그녀는 내가 만났을 때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참담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자~ 반면에 M의 관점에서 이 모든 과정을 복기해보면, 그녀는 정말 철저한 준비와 절묘한 전략적인 선택, 그리고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에 개인적 역량까지 버무려 성공적으로 앞서간 사례에 해당한다. 왜?

M은 (1)취업 전에 그곳에서 일했던 언니로부터 정보를 철저하게 수집했고, (2)다른 알바 장소를 마다하고 굳이 언니가 일했던, 언니와 친분이 있는 선배들이 많은 업장을 전략적으로 선택했고, (3)입사 후 언니가 알려준 대로 시키기 전에 알아서 일을 처리하는 기민함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K는 어떻게 했어야 할까? 앞서 첫 번째 경고를 울린 시점에서, 그녀는 식기 닦기 업무 복귀 명령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일단 점장이나 매니저에게 앞으로 실수 없이 ‘정~말’ 열심히 하겠노라고, 잘 지도편달해주기 바란다고 말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만약에 그렇게 했더라면 최소한 직장 상사들에게 ‘열의는 있구나’라는 인식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래, 뭐 매장 주문받기가 대단한 업무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잘 해내겠지’ 또는 ‘후배들 보기에 쪽 팔리긴 할 꺼야’ 라면서, 결정을 번복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진행되었다면? 물론 그 뒤에 알바 따위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 두 번째 경고가 울린 시점에서 K가 잘못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언니나 친구가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나이에 유사한 경험까지 없다면, 그녀들의 조언은 해주나마나한 것에 불과하다. 더욱이 언니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그녀의 고민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소심한 그녀가 속 깊은 이야기를 했을 리도 없고.

이때에도 그녀는 직장상사인 점장이나 매니저에게 조언을 구했어야 한다. 물론 그 중 더 가까운 사람을 택해서, 자신의 고충을 털어 놓고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하소연을 하는 편이 더 나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언니나 친구들은 매장에서 벌어지는 일과 관련해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하소연을 함으로써 심리적 위로를 얼마간 얻을 수는 있겠지만,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자~ 세 번째 경고가 울린 이 시점에서 그녀가 할 일은 무엇일까? 그냥 접을 것이 아니라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고민은 상당부분 해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후배들이 보는 눈도 있고 해서 M이 고참 행세를 하는 게 영~ 인간적으로 불편하다거나, 실은 그녀가 은근히 일을 미루고 있다는 따위의 이야기가 점장이나 매니저에게 전달된다면, 그들이 M을 예전같이 생각할까?

최소한 좀 더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할 것이고, 어쩌면 지나가는 말로 M에게 조언이나 경고를 할 수도 있을 것이며, 백일하에 그녀의 방자한 행동이 발각되는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당히 늦었다고도 볼 수 있는 지금에라도 이런 행동을 취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첫째, 이대로 물러서면 자신감 상실로 오랜 침체기를 겪거나 영원한 루저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둘째, 사소한 알바 일이라고는 하지만 실패의 경력과 소문은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퍼져서 마치 꼬리표처럼 일생동안 따라다닌다.

반전의 기회는 반드시 찾아온다. 그 기회를 낚아채려면 결정권을 가진 사람을 찾아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 괜히 주변사람들을 쑤석여봐야 짜증만 유발하거나 직장생활 부적응자로 낙인만 찍힐 뿐이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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