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외국팀의 한국인 감독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호주 양궁의 중흥을 책임진 이기식(43), 페루 배구의 아버지 박만복(63), 말레이시아의 배드민턴 영웅 박주봉(36)….

시드니 올림픽에서 조국과 한판 대결을 벌이게 될 한국인 지도자들이다.

소속 국가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이들은 한국팀의 장단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한국에는 무척 껄끄러운 상대이기도 하다.

1992년 바르셀로나,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무적 코리아 양궁' 신화를 일궜던 이기식씨는 3년 전 호주 대표팀 감독으로 초빙됐다.

2004년까지 임기를 보장한 호주는 이감독에게 남녀 단체전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강하고 수시로 방향이 바뀌는 변덕스러운 시드니 바람에 익숙한 호주 선수들은 이감독의 세심한 지도로 자신감에 차 있다.

한국 남녀 대표팀 이왕우.장영술 감독은 대표팀 코치로 이감독을 보좌한 적도 있다.

'배드민턴의 살아있는 신화' 박주봉씨는 은퇴 후 영국 대표팀을 지도하다 99년부터 말레이시아로 옮겨 갔다. 연봉 2억원, 주택과 승용차 제공, 대학원 학비 전액 제공 등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에는 박씨의 이름을 딴 햄버거인 '주봉 버거' 가 등장할 정도로 박씨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박씨로부터 '송곳 스매싱' 을 전수받은 옹 충한(남자 단식), 충탄푹-리완와조(남자 복식)는 메달에 도전할 실력을 갖췄다.

73년 혈혈단신 페루로 건너가 페루 여자 배구팀을 맡았던 박만복씨는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페루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따내 일약 페루의 국민영웅이 됐다.

94년 박씨가 일본 실업팀의 스카우트를 받아 떠난 이후 페루 여자배구는 급전 직하, 페루 정부에서 부랴부랴 박씨를 다시 불러들이기도 했다.

상대의 빈틈을 날카롭게 집어내는 박씨의 감각은 상대 감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요소다.

이밖에 태권도는 종주국 출신답게 51개 참가국 중 3분의 2가 한국인 사범이 감독을 맡고 있어 한국의 '금메달 싹쓸이' 전선에 위협을 주고 있다.

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