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나무도 '겨울잠' 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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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오매(어머나), 단풍 들것네./장광(장독대)에 골붉은 감잎 날아오아/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쳐다보며)/오매, 단풍 들것네.(후략)'

1930년 3월 '시문학' 창간호에 실린 김영랑(1903~50) 시인의 대표 작품 '오매, 단풍 들것네'의 일부다.

작가는 장독대 위로 바람에 실려와 사뿐히 내려앉는 빨간 감잎 단풍에서 가을을 느낀다.

이제 한반도가 신록에서 오색 단풍으로 옷을 바꿔 입는 철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반복되는 자연의 섭리임에도 단풍은 늘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단풍은 왜 생기는 걸까?

▶단풍이 드는 원인은=단풍 현상은 낙엽수가 겨울을 나기 위한 자구책의 결과다.

나무는 잎에서 광합성을 해 양분을 만들어야 살 수 있다. 광합성엔 햇빛과 수분.이산화탄소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겨울에는 온도가 낮고 물이 부족해 광합성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나무는 그래서 여름 한 철 잎을 무성히 피우고, 부지런히 광합성을 해 양분을 축적한 뒤 겨울잠을 잔다.

나무가 잎을 단 채 겨울을 난다고 쳐보자. 가뜩이나 부족한 수분이 잎의 기공을 통해 빠져나가고, 그 과정에서 얼어죽을 수도 있다. 결국 나무는 잎을 모두 떨어뜨려야만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는 것이다. 낙엽을 만들기 위해 나무는 기공을 모두 닫고, 떨켜층을 만들어 잎에 공급되는 수분을 차단한다. 떨켜는 잎꼭지가 가지에 붙은 부위에 형성된다.

기공이 막혀 이산화탄소의 공급도 원활하지 못하고, 떨켜 때문에 물을 공급받지도 못하지만 나뭇잎은 일정 시점까지 계속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한다.

이때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양분은 반대로 떨켜에 막혀 줄기로 가지 못한 채 잎에 남게 된다.

양분이 쌓이면서 잎 안의 산성도가 높아지게 되면 엽록소가 파괴된다. 대신 엽록소(신록)에 가려 여름내 보이지 않던 노란 색소(카로틴과 크산토필)가 나타난다.

이게 바로 단풍 현상인데, 이 과정에서 잎에 없던 붉은 색소(안토시아닌)도 생성된다.

▶색이 왜 다양할까=단풍은 노란색부터 빨강까지 다양하다. 식물마다 단풍 빛깔이 다른 것은 붉은 색소와 공존하는 엽록소나 황색.갈색 색소 성분의 함유량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노랑 단풍이 드는 이유는 노란 색소의 경우 햇빛을 받아도 변질되지 않으므로 엽록소가 파괴된 뒤까지 잎 속에 남아 노랗게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갈색을 띠는 단풍은 카로틴 이외에 타닌이라는 색소가 들어 있어 그렇다.

붉은색 단풍은 엽록소가 파괴된 뒤 잎 속에 없었던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가 새로 합성되면서 나타난다. 안토시아닌은 광합성으로 생긴 당이 많을수록 생성이 촉진되며, 노란 단풍보다 햇빛 등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식물은 단풍 시기를 어떻게 알까=식물은 낮의 길이와 온도를 감지하고 반응한다. 일반적으로 낙엽기는 낮이 길면 늦어지고, 낮이 짧으면 촉진된다.

가을에 낮의 길이가 짧아져 일조량이 적고 기온이 떨어지면 식물은 월동 준비에 들어간다. 예컨대 가로등이 잘 비치는 곳에 심은 은행나무 가로수 잎은 어두운 곳에 있는 것보다 오래 간다.

온도도 낙엽에 영향을 준다. 떡갈나무는 가을이 되면 자연에선 낙엽이 되지만 온실에선 그렇지 않다. 이러한 자연 환경을 감지하고 조절하는 데는 피토크롬(빛에 반응하는 식물체 내의 색소단백질)이란 물질과 에틸렌.앱시스산 등의 호르몬이 관여한다.

이태종 NIE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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