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세대 혼수준비 "우린 구색 맞추기 안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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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젊은이들의 결혼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결혼만큼은 부모님이 준비해주는 것으로 생각하던 것은 이미 옛날.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혼수품을 고르고 구매에도 적극적이다.

의미도 모르는 예단이나 예물에 얽매이는 일 없이 자신이 꼭 필요한 물품에만 돈을 쓴다.

특히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올해엔 집값 마련을 위해 다른 결혼비용을 줄이는 것이 최대 과제다. 이들에게 인터넷이나 통신을 통한 보다 싼 정보 교환은 필수적이다.

10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윤정훈(28.서울 송파구 방이동)씨는 천리안을 통해 혼수품 공동구매단을 직접 만들어 가전제품 판매업체와 직접 협상을 벌였다.

여러 업체와 협상끝에 한 가전제품 전문업체에서 할인가격보다 약 10% 낮은 가격에 물건을 사기로 했다.

현재 윤씨가 만든 공동구매단에 참여하고 있는 예비신랑.신부들은 약 1백여명. 아직도 계속 참여가 늘어나 윤씨의 협상은 더욱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혼수품 준비를 전부 여자쪽에서만 맡던 시대도 이미 지났다. 남자들도 정보를 교환하고 물건을 고르는 데 적극적이다.

웨딩정보업체인 웨딩아이네트(http://www.weddingi.net)장현영 실장은 "현재 가입회원 가운데 약 35%는 남자 직장인이다. 여자쪽에서 혼수를 전담하던 풍속은 달라지고 있다" 고 말한다.

이처럼 혼수를 고르는 데 신랑.신부 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되다 보니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구색 맞추기식으로 물건을 사는 일도 없다.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 혼수를 준비하는가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구매가 이루어진다.

'반상기 세트, 냄비 세트' 하는 식으로 평생 쓸 그릇을 몽땅 준비하는 대신 '그릇 5개, 냄비 3개' 하는 식으로 혼수품을 준비한다.

맞벌이가 늘면서 집에서 밥을 해먹기보다 외식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계산도 작용한다. 큰 손님을 치를 때면 빌려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장롱이나 화장대도 취향에 따라 혼수품목에서 빠지기도 한다. 10월 15일 결혼할 예비신부 강진영(27.회사원)씨는 장롱 대신 공간을 적게 차지하고 값도 싼 행거를 선택했다.

또 화장대는 3단 서랍장에 거울을 달아서 쓸 계획. 집안 인테리어를 위해 인터넷 웨딩사이트를 열심히 뒤진 끝에 웨딩아이네트(http://www.weddingi.net)의 한 컨설턴트가 추천한 대로 단순하고 넓게 쓰기로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남편될 이한종(31.회사원)씨도 비싼 가구에 돈을 들이느니 꼭 사고 싶었던 멋진 오디오 세트를 구입하자는 강씨의 말에 찬성, 가구를 줄이고 자신이 원하던 오디오와 강씨가 요구하는 29인치 평면TV를 사는 데 동의했다.

예물과 예단도 많이 간소화됐다. 예물로 '다이아세트.루비세트.금세트' 를 모두 한벌씩 마련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깨졌고, 예물의 기본으로 여겨졌던 다이아세트도 생략하는 사람들이 많다.

동대문시장에서 보석 도매상 '흥부' 를 운영하는 최석연 실장은 "올 상반기 다이아몬드 판매가 지난해의 60%에 불과하다" 며 "특히 재산가치가 없는 루비나 사파이어.에메랄드 등의 유색 보석은 50% 이하로 떨어졌다" 고 전한다.

가장 많이 팔리는 다이아도 2부에서 3부 정도의 자그만한 것들이며, 평소 지닐 수 있는 단순한 디자인에 백금으로 세팅한 것들이 가장 인기다.

하지만 신랑.신부 두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전자제품. 결혼전문 포탈사이트 미스웨딩(http://www.misswedding.com)의 한정선 팀장은 "한번 사면 오래 쓸 수 있는 TV.오디오.냉장고.세탁기 등은 최고 용량에 최고 품질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고 말했다.

신혼여행도 젊은이들이 투자를 아끼지 않는 부분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맞아 국내 신혼여행이 잠깐 늘기도 했었지만, 요즘은 다시 해외로 나가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올해 신랑신부들의 인기 코스는 동남아의 유명 리조트들. 저렴하지만 각종 옵션으로 고역을 치르는 패키지 여행보다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다양한 레포츠를 즐기며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길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한편 가을을 겨냥한 결혼전문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예비부부들의 정보 얻기도 더욱 쉬워졌다.

올 한해 탄생하는 신혼부부는 총 35만쌍. 전문가들은 올 가을에 역술가들이 말하는 길일(吉日)이 많아 이 중 25만쌍 가량이 올 하반기에 결혼식을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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