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정부 고래싸움에 환자만 등터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28일로 전공의(레지던트) 파업 한달이 됐다. 의약분업 전면시행도 31일로 한달이 된다.

처방전에 기재된 약이 약국에 없어 조제를 못하는 환자는 약간 줄어들었지만 약 공급 차질.환자 불편.진료비 증가 등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전공의 파업을 계기로 재연된 의료계의 폐업은 동네의원들의 진료복귀로 수그러들었지만, 대학병원과 대형 종합병원의 가동률은 뚝 떨어져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대화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의과대학 교수들이 30일 결의대회를 여는 등 의료계는 계속 반발하고 있다.

◇ 환자 불편 여전=전문약 공급이 여전히 원활하지 못하다. 도매상과 제약사들이 약국에서 현금을 받은 뒤 약을 공급하고 있고, 제약사들이 도매상에 담보를 요구하는 관행은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다.

상당수의 동네의원들도 약국에 처방약 리스트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 환자들은 약을 조제하지 못해 이 약국 저 약국 헤매거나 주사제를 제대로 구하는 못해 발을 구르는 불편을 겪고 있다.

건강연대 허윤정 건강네트워크실장은 "환자들이 약을 못 구해 약국 6~7군데를 전전하거나 대형약국에 왔다가 주차위반 딱지를 떼이는 등 불편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고 지적했다.

호전의 기미도 있다. 약사회 신현창 사무총장은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는 의협 집행부와 달리 대체조제.변경조제 등에 대해 동네의원과 동네약국간의 협조체제가 조금씩 구축되고 있어 약 공급 부족현상을 메워주고 있다" 고 말했다.

◇ 진료비 증가 등 문제점=진료비 증가에 대한 민원도 여전하다. 7월 의료보험 수가 인상조치에 따라 나흘치 이상의 약을 조제하는 환자와 보건소에서 2만2천원어치 이상의 약을 처방받는 환자는 본인부담금을 더 물어야 하기 때문에 불만이 높다.

9월부터 의보수가가 6.2% 더 올라가기 때문에 불만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약국의 임의조제와 처방전의 변경조제가 횡행하고 의료기관과 약국의 담합이 늘어나는 등 의약분업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불법행위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단속의 손길은 미미한 편이다.

"이런 문제들을 조기에 차단하지 않을 경우 관행화해 의약분업의 의미가 퇴색할 우려가 있다" 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약값을 일부 또는 전부 면제받는 의료보호 환자에 대해 약국이 조제를 기피하는 현상도 있다.

◇ 전공의 파업 전망=전공의와 정부는 물밑대화를 계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현 상황으로서는 파업의 장기화가 우려된다. 전공의들은 비상대책위 조직을 강화하고 수련병원별 홍보조직을 만들어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입장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비대위는 최근 의사통신망에 올린 투쟁지침에서 "협상에 임할 자세가 돼있지 않은 정부와 대화해 봐야 결렬될 소지가 크다" 면서 "정부와의 협상은 시기상조" 라고 주장했다.

복지부는 전공의 처우개선, 거점병원 육성, 전공의 복귀명령 및 해임 등 대책을 내놨지만 실효가 없어 속앓이를 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더 강공책을 쓰면 전공의와 의과대학 교수.의대생 등이 극단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커 고민" 이라고 토로했다.

동네의원들은 28일 진료에 완전 복귀했으며 일부에서 무료진료 투쟁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폐업의 장기화로 경영상태가 악화돼 참여율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