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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경찰 보수 현실화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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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흔히 드는 예이지만 미국에서는 건축현장의 배관공이 대학교수보다 보수를 많이 받고 청소원이 은행창구의 여직원보다 시간당 임금이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학력이 높고 근무환경이 좋은 직종일수록 보수수준이 높은 현상이 보편화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보수는 직무의 책임도와 난이도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같은 종류의 일을 하더라도 직급이 높으면 그만큼 책임이 크기 때문에 보수를 더 받는 것이 당연하다.

또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구비해야만 일을 해낼 수 있다면 그 직업 역시 우대되어야 한다.뿐만 아니라 열악한 근무조건 속에서 고되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도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안된다.그 대표적인 직종이 경찰직일 것이다.

경찰은 24시간 교대 근무를 해야 하고 비상근무가 수시로 요구되는 등 정상적인 출퇴근이 불가능하다.다른 직종처럼 저녁에 퇴근하고 휴일이나 명절에 쉬는 경우가 없다시피 한다.

업무 자체도 각종 사고와 사건에 접하면서 범법자를 단속하거나 규제해야 하는 등 인기없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업무량 자체가 많아 과로가 일상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교통정리.범죄자 체포.재난처리 등의 경우에는 생명의 위협을 받을만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경찰관들은 건강상태가 매우 열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공무원 건강진단 결과 경찰관은 정상판정률이 약 40%로 공무원 중 최하위이며 질환이 의심되는 비율은 약 20%로서 공무원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되었다.최근 5년간 순직한 경찰관의 비율도 일반 공무원보다 4배나 높다고 한다.

이처럼 업무가 어렵고 과중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찰관들은 박봉으로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역대 위정자들이 공무원의 보수를 대기업 또는 국영기업체 수준으로 개선하겠다고 선심공약을 했지만 실현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공무원들에게는 낮은 보수를 지급하면서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자세만 요구해왔다.

특히 경찰관에게는 민중의 지팡이라는 멍에만 지웠을 뿐 보수는 공무원 중에서도 낮은 수준을 감수해야 했다.직무가 비슷한 군인과 공안직과 비교하더라도 기본급이 10∼15%나 낮은 상태이며 재직기간이 길어질수록 다른 직종과의 격차가 더 커지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근무시간이 과중한데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휴일을 포함하여 일과 시간외에 아무리 많은 시간을 더 근무해도 시간외 수당은 일반공무원에 준하여 하루 3시간씩,월 75시간만 인정해줄 뿐이다.

특별방범수당이나 교통요원수당,외근형사활동비 등 경찰직에만 지급되는 각종 수당은 4∼10년째 동결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보수체계상 경찰직의 직무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경찰은 일반직 공무원과 달리 군인,검사,교원처럼 특정직 공무원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독자적인 보수관련법규가 없이 일반직 공무원의 보수체계를 준용하고 있어 특수성을 반영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현실적으로 경찰관의 물질적 근무조건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또 다른 요인은 수사활동에 필요한 식비나 여비 등의 예산이 실제 소요 경비의 40∼60%에 불과한 액수로 책정돼 있다는 점이다.과거에는 그러한 경비의 부족액을 민원인이나 지역유지들로부터 조달하여 비리를 유발하였고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는 그러한 관행도 없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결코 있어서는 안될 폐습이다.

경찰관들이 박봉으로 생계유지가 곤란하고 수사비가 부족하여 민원인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면 공정하고 깨끗한 근무자세를 견지하기 힘들 것이다.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높은 사기 속에서 사회 기강을 확립함과 아울러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건설에 앞장설 수 있으려면 경찰관의 처우개선과 경찰 예산의 증액이 선결요건이라고 본다.더 나아가 날로 복잡·전문화되어가는 21세기 정보기술사회에 걸맞는 인재들을 경찰요원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도 경찰직의 보수는 최소한 적정수준으로 인상돼야 한다.

김신복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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